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의 천지창조 프레스코화에 대한 글을 보다가, 하느님의 모습이 제우스와 같다는 내용을 봤었다.
머리 속에 어떤 형상이 있어도, 말이나 그림으로 실감나게 옮기는 게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많이 느끼는데,
하느님이 제우스의 이미지라는 말은
과연, 예술가들이 추상적인 개념을 가시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과,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는 이해가 동시에 왔었다.
일단 시스티나 경당 천정화에 나타난 하느님 사진을 캡쳐했고,
제우스의 얼굴이 드러난 몇가지 그림을 모아봤다.
꼭 같지는 않는것 같다.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테베레강에서 막센티우스와 패권을 다투는 전투를 벌일 때, 하늘에 십자가가 나타나고 이 표적으로 이기리라는 환영을 보게 되었고, 방패와 깃발에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휘장이 그려졌다고 하면서,
라바룸(Labarum)이라 불리는 이 휘장이 그려진 로마군 깃발은 서양 문명의 중심축이 헬레니즘에서 헤브라이즘으로 옮겨가는 것을 알리는 징표이자 신호탄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제국을 지배하던 그리스, 로마 신들의 자리를 기독교 신이 차지하는데,
기독교 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 신들을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은 형상이 없지만, 사람들은 신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언급을 한다.
다른 글을 보니, 아나톨리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함에 있어, 그리스 신보다는 더 권위가 있게 표현하려다 보니, 역시 제우스의 이미지를 상당히 고려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형상이 없는 헤브라이즘의 신을, 사람들의 이해를 쉽게 하려 하기도 하고, 가슴속의 뜨거운 것을 구체화하려는 예술가들의 욕망은,
수세기 동안 발전시켜왔던 헬레니즘의 신의 모습을 많이 활용하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것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종교를 많이 믿지는 못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왜 신앙이란 것이, 미신적인 것을 그리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실마리도 준다.
형상이 없는, 추상적인 진리의 개념으로 가기도 쉽지가 않고, 그것에 갈급하지도 않으니 어느 지점에 머물고 마는 것이 아닐까.
추상적으로 무슨 말인지 와 닿지 않던, 서양 문화의 큰 두 축이라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또 오늘은 이 둘이 하나로 융합되는 장면을 잠깐 봤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와, 하느님이 제우스라니, 이 말에, 올림푸스 12신을 계속 들여다 보게 된다.
지난 번 올림피아 신전을 방문했을 때, 제우스의 얼굴이 그려진 T셔츠가 그리 끌렸음에도
입고 다니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지 않았었다. 생활에서의 소소한 충돌인 셈이다.
도구와 목적(본질)는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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