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피렌체의 메디치가

haghiasophia 2020. 1. 12. 22:49

메디치가문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가문이라고 한다.

무려 네명의 교황을 배출했다.

혼인을 통해 나중에는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의약으로 재산을 모은 다음 금융업으로 발전했던 가문인데

아베라르도 데 메디치는 메디치 왕조 시대를 연 장본인이고

아베라르도의 아들인 지오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1397년 메디치 은행을 설립하여 가문의 재산을 늘렸고

코시모 데 메디치는 르네상스 시기에 사실상의 피렌체 통치자로 군림했던 메디치 정치 세력의 창시자,

로렌초 데 메디치는 르네상스 황금기 동안의 피렌체의 군주였다고 한다.

코시모 디 메디치는 맞수 시에나를 정복하고서 공화정을 붕괴시키고 토스카나 대공국을 창건했다고 한다.

하단은 피렌체 공화국의 문양과, 1084년과 1494년의 이태리 지도이다.


아래는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네명의 교황들이다.

왼쪽부터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비오 4세, 레오 11세다. 세속 권력 뿐만 아니라 종교까지 큰 영향을 미쳤던 가문이다.

레오 10세(재위 1513-1521)는 조반니 디 로렌초 데 메디치로 피렌체 공화국의 실질적 통치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의 차남이었다.

성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기금 마련을 위한 면벌부 반포를 승인했고, 1521년에는 마르틴 루터를 파문했다. (1517 마르틴 루터의 95조 반박문)

클레멘스 7세(재위 1523-1534)는 줄리오 디 줄리아노 데 메디치로, 피에로 메디치이 아들이자 로렌초 메디치의 동생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아들이었다.

비오 4세(재위 1559-1565)는 조반니 안젤로 디 메디치,

레오 11세(재위 1605-1605)는 알렉산드로 오타비아노 데 메디치였다.



메디치 가문은 밀라노의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페라라의 에스테, 만토바의 곤차가 등 다른 위대한 귀족 가문들과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내는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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