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중세 스콜라와 대학의 설립, 아리스토텔레스

haghiasophia 2019. 12. 22. 13:20


중세 대학은 11세기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중세의 시작은 로마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긴 330년으로 본다)

대학은 학생들과 교수들의 연합체로 생겨났고

유럽 남부에서 학생 주도 특성을 갖는 볼로냐 대학, 살레르노 대학들이 생겨났고

유럽 북부에서는 교수 주도 특성을 갖는 파리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들이 생겨났다.


대학 이전 중세의 교육 기관은 스콜라가 담당했다.

스콜라는 수도원 학교, 궁정학교, 주교좌성당 학교, 개인학교로 구성되었다.

수업은 언어관련 3학(문법학, 논리학, 수사학)과 수학관련 4학(산술학, 기하학, 음악학, 천문학)의 7 자유학예를 가르쳤다.

이곳 스콜라에서 스콜라 철학이 만들어지고 발전되었다.


시작은 언제였을까?

최후의 로마인이자 최초의 스콜라 학자라고 하는 보에티우스(475-525)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뛰어난 학식을 인정 받아 동고트족 테오도리쿠스 대제의 집정관을 거쳐 최고의 행정사업관까지 올랐었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게르만 용병 오도아케르의에 멸망하고, 다시 테오도리쿠스 대제가 동고트 왕국을 세워 493년부터 553년까지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다.

이때부터 스콜라는 중세를 지탱해 오면서 대학의 설립에까지 이르게 된다.


대학의 설립 시점에 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랍을 통해 다시 전파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단일지성론은 신의 섭리와 기적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파리대학은 논리학을 제외한 형이상학과 자연철학의 강의를 금지한다.

강의 금지령은 1210년, 1215년, 1231년, 그리고 1246년에 연이어 내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1255년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작품을 수업에 허용하도록 허가가 내려진다.


다양한 학문적 의견과 충돌이 있었던 서양 중세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끝없는 갈등을 서양 중세 철학에서 다루게 된다.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다루는 세가지 경향이 나타났었는데

첫번째가 보수적 아우구스티누스 주의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도교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다.

플라톤을 받아들인 아우구스티누스를 존경했고, 자연학에서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을 인정했다.

탁발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가 이 견해를 따랐으며, 교회 지도층 대부분이 보수적 아우구스티누스 주의를 따랐다고 한다.


두번째는 극단적 아리스토텔레스 주의로, 라틴 아베로이스 주의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지혜의 화신으로 여겼다.

세번째는 온건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였다. 적극적 태도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였다.

자신의 체험과 진리와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비판, 수정하였다.

도미니코 수도회가 이 견해를 가졌고, 알베르투스 마그누스가 대표적인 학자였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가 강의 금지령을 내린 교회 지도층을 설득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전면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취약점까지 보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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