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과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로 알고 있던 마르셀 뒤샹.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전을 보고 나니 난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팜플렛이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대중만이 제 관심사입니다."라는 그의 표현으로 시작한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작품을 중심으로 마르셀 뒤샹의 작품 150여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단 그림은 주로 구글링한 사진들임)
1887년에 태어난 그는, 15살인 1902년에 클로드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풍의 그림을 그렸고, (블랭빌 교회 1902)
23세인 1910년부터 폴 세잔과 같은 후기인상주의풍의 그림,(예술가 아버지의 초상 1910)
조금씩 야수파에 가까와지는 그림, (체스게임 1910)
좀더 과장된 형태로 표현되고, 의미를 함축하는 모습까지 보여지는 그림 (의사 뒤무셀의 초상 1910)까지
그림이 변해간다.
1910년작 수풀은 뚜렷한 윤곽선의 고갱 느낌,
1911년작 소나타는 입체파의 느낌을 갖는다.
그의 그림은 체스선수의 초상(1911)을 거쳐
킹과 퀸을 에워싼 누드들(1912)에서 완벽한 입체주의 그림을 선보인다.
그리고 미래주의라고 불리는 그림으로 넘어간다.
많이들 알고 있다시피,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1912년 파리 앙데팡당전에 출품되었다가, 작품의 수정을 요구받고 내려지게 된다.
하지만 1913년 미국 아모리쇼에서 논란을 일으키며 그가 유명인사가 되는 계기가 돤다. 그의 나이 26세다.
미래주의(움직임이 있는)에 해당되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그린 후 그는 다시 한번 더 틀을 깨트린다.
뮌헨에서 3개월간 있으면서 만든 작품이 신부(1912년작)인데
분절성이 없이, 입체적, 기계적 움직임이 명확해진다고 설명하던데, 어떻게 이게 사람인가 싶다.
그나마 여기까지가 그의 회화라고 하는 시절의 마지막인 듯 싶다.
무미건조한 표현의 초콜릿 분쇄기 1번과 2번 작품.
여기서 예술가의 손재주보다는 어떤 개념, 어떤 아이디어인가에로 관심이 넘어간다.
2번작품으로 가서는 붓질만이 아닌 다른 오브제가 작품안으로 들어와 버린다.
그리고 나온 작품이 '큰유리'
유리에 만든 작품이다.
<그녀의 독신자들에게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라는 작품은 1912년부터 구상을 시작하여 1915년부터 1923년 사이에 만들어진다.
팜플렛에서는 이 작품이 예술을 시각적인 것에서 개념적인 것으로 바꾸려했던 뒤샹의 목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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