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나를 그리다, 자화상

haghiasophia 2019. 3. 24. 15:52

화가는 자화상을 팔려고 그리지는 않는다.

왜 자화상을 그릴까? 모델을 구하기 힘들때 연습삼아 그리기도 하지만, 화가가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반영하는 의미도 크다.


Louis Janmot라는 화가가 18세에 그린 자화상이다.

눈을 약간 찌푸리기까지 쫑긋 뜨고 거울을 응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는 어떻게 생겼고, 혹시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은 무엇이고, 내가 원하는 나는 누구고, 되고 싶은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20대 근처의 불안함도 느껴지고 있다.


빛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렘브란트가 22세에 그린 자화상이다.

보통의 자화상과 구도가 다르다.

의관을 제대로 다 갖추고 있어, 정성을 다해 그림에 임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그런데 캔버스 앞으로 다가가지 않고 약간 어두운 곳에 떨어져 서 있다.

빛이 있음으로 어두운 곳에 있는 그의 모습이 빛이 나는 것 같다.

스스로를 꾸미기보다 자기 자신이 내는 빛을 그리려 한다.


Hans Thoma라는 화가가 그린 자화상들이다.

하나는 36세에 그렸고, 하나는 60세에 그렸다.

나의 기록, 나의 자세를 그리는 그림이기에 나를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용기와 자존감이 필요하다.

36세의 그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사랑을 상징하는 큐피드를 함께 그림에 담았다.

그 나이에 그의 삶은 죽음도 사랑도 큰 주제였을 것이고, 배경으로 푸른 나뭇잎과 녹음이 있는 마을의 모습을 담아냈다.

눈빛과 표정은 뭔가를 이루어내려고 하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60세의 그는 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고, 얼굴에 약간 힘이 덜 들어가 있어 지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고

배경에는 단풍이 들어 가을, 겨울로 넘어가는 숲의 모습, 아니면 저녁 노을의 모습이 묻어 있다.

Arnold Bocklin이라는 화가의 자화상이다.

하나는 45세에 그린 그림이고 하나는 61세쯤 그린 그림이다.

이 화가도 불혹을 넘긴 나이에서 삶과 죽음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은 바이올린에서 단 한줄 남은 줄(G string)을 연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다른 자화상, 이순을 넘겨 그린 자화상에서는 그의 모습도 흐릿해졌고, 배경도 흐릿해져있다.

그림을 그리고 2년후 세상을 뜨는데, 이미 예감을 해서였을까, 무엇을 가지고 갈지 생각해서 배경을 거의 남기지 않은 것인가 싶다.


Lovis Corinth라는 화가의 자화상들이다.

38세때의 그림은 이 화가도 해골을 같이 그려 넣었다.

45세때의 그림은 누드 모델을 같이 그려 넣었다.

50세의 그림은 디오니소스급 그림이다. 취한 모습을 그려냈다.

54세의 그림은 머리칼을 잘리고 눈이 먼 삼손급 그림이다. 눈에 선 피가 나고 몸은 벌써 살이 늘어져 나이든 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손은 묶여 있다.

왜 이런 모습을 화가는 그려야 했을까? 어떤 모습을 직시해서였을까?


Albrecht Durer의 자화상이다. 13세의 소년이었을 때의 작품과, 22세 청년 시절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27세 때의 그림과 29세 때의 그림이다.

22세 때의 그림은 결혼할 상대방의 집(처가)에 보낸 그림으로 엉겅퀴를 들고 있다. 자신감 있는 모습니다.

27세 때의 그림은 장갑을 끼고 있다. 창문 너머로 강과 산이 보인다. 독립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한다.

29세 때의 그림은 그리스도의 포즈를 하고 있는데, 다만 그의 오른 손이 그의 가슴을 향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그의 눈이 맑고 영롱하게 그려져 있다.

내 고통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라면, 남도 바라볼 수 있다고 이동욱 신부님께서 설명을 하셨었다.

나의 심장을 뚫고 나와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하는 인생.

뒤러의 1500년 그림은 1710년 한국의 윤두서의 그림과 그 눈매가 맥이 닿아 있다.


윤두서의 자화상 컨셉은 2013년의 한국 영화 관상에서 사용되었다.

다른 젊은 배우들보다 송강호의 이미지가 훨씬 더 비슷하다. 삶이, 나이가 있어서였을까...


나를 그리는 자화상.

나의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나의 소중한 부분을 찾는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용기 있게, 자존감 있게 그린다.

그 과정은, 보통 자신의 싫은 모습을 떠올리는 시간은 2초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좋은 모습을 떠올리는데는 시간이 제법 많이 필요하다.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들은 자신의 좋은 모습을 생각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엉겅퀴나 해골, 에린지움 등의 소품 등으로 자신의 마음상태를 좀더 표현한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랑을 마음속에 둔다면, 이런 것들이 삶속에 종종 투영되어 있는 삶이라면

하느님의 삶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왜 나에게는 꽃밭이 없나 느끼는 사람은 타인에게 요구하거나 없는 것을 한탄한다고 한다.

내가 꽃씨를 뿌리는 사람이 신앙인이고 신자라고도 했다.

내 기분이 구린 이유는 내가 선을 행하지 않아서라고도.

(2019 사순절 특강, 이동욱 신부님, 나를 그리다, 노년,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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