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치마부에

haghiasophia 2019. 2. 24. 20:47

치마부에는 1240년경부터 1302년경에 살았던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항상 조토 디 본도네와 같이 이름이 나오고, 피렌체파 화가이며, 비잔틴 예술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설명이 따른다.

치마부에Cimabue는 소의 머리라는 뜻의 별명으로, 본명은 벤치비에니 페포라고 한다.

비잔틴적으로 작품을 그렸으며, 그를 기점으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길이 열렸다는데 작품을 통해 어떤 부분인지 보려고 한다.


아래 그림은 치마부에의 마에스타라는 프레스코화다.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1층 성당에 있는 작품으로, 바로 옆의 조토의 작품과 비교가 되는 그림이기도 하고,

작품 속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습이 실제 모습과 가장 가까왔을 거라 이야기되는 작품이다. 

치마부에의 마이스타 작품은 1층 성당 제단을 중심으로 좌측 첫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로 성프란치스코 성당 2층은 고딕 양식의 성당, 1층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고, 지하에 성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그림으로 돌아와 보면

마에스타라고 불리는 그림은 옥좌에 앉으신 성모마리아를 그린 큰 제단화를 우선 말한다.

시모네 마르티니와 두치오의 마에스타를 먼저 보자.

성모님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치마부에의 마에스타는 정면에서 약간 틀어져 있다.


의자(옥좌)를 보면 오른쪽을 향해 있다.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아 의자도 앞보다 뒤가 더 벌여지게 그려져 있다.

천사들을 보자.

오른쪽의 천사들은 앞과 뒤의 의자 기둥을 잡고 있다.

반면 왼쪽의 천수 둘은 모두 뒤의 의자 기둥을 잡고 있다.

평면에서는 가능해 보이지만, 실제 3차원에서는 이런 자세는 나올 수 없다.

성모님의 얼굴은 온화한 반면, 옷 주름은 좀 어색하다.

성모님의 후광은 그림 밖으로 나와 있다.

천사의 얼굴을 보자면 눈썹 주위나 목부분, 어깨선 등에서 볼륨감을 느낄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비잔틴적 요소(선 중심)가 많고 딱딱한 느낌을 주고 있다.


마에스타에 표현된 프란치스코 성인이 우측인데 프레스코화로 표현된 것이고, 좌측은 Santa Maria Degli Angeli Assisi 성당에 있는 목조템페라로 그려진 작품이다.

프레스코화는 빨리 그려야 해서 섬세함이 다소 약한 반면

템페라로 그려진 작품은 거의 똑같은 내용이나, 얼굴에 패인 주름이나 옷자락 들을 통해 볼 때 좀 더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 프레스코화 :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벽화로, 석회/석고 등으로 만든 석고벽의 건조가 채 되지 않은 덜 마른 벽면에 수용성 그림물감으로 채화하는 기법

* 템페라 : 고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프레스코화와 달리, 계란 등의 고착제를 사용. 내구성이 튼튼하며, 건조하면 색이 더 밝아진다고 함. 목조, 벽, 캔버스에 그렸음

* 유화 : 여러 종류의 기름에 색소를 섞어 만든 물감을 사용하며, 건조된 후에 색채의 질이 빨리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오랜 기간 보존이 됨. 16세기 르네상스로 접어들면서 서양미술의 주요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됨


다음으로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에 있다고 하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라는 작품이다.

1287~1288년 작품으로 목조 템페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크기는 4.48x3.9m나 된다.


이 십자가의 이해를 위해 연대기를 만들어 봤다.


치마부에는 13세기 후반기에 주로 활동을 했다.

13세기초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가 활동을 하던 시절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예수님을 신 만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보고 예수님과 똑같아 지려는 삶을 살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오상까지 받으셨던 분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아시시의 성 다미아노 성당에 걸려져 있는 12세기 비잔틴 양식의 이콘이 그려져 있는 이 십자가 밑에서

1205년 '가서 무너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이 십자가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자.

십자가에 못박히신 고통이 들어나지 않는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다.

몸의 근육도 사실적이지 않다.

하단의 성모마리아, 사도 요한,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백인대장, 작게 그려진 경비병.

성모님과 마리아 막달레나도 슬퍼하기 보다는 웃고 있는 모습이다.

비탄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관조하는 듯 평안한 모습.

신이기에 신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다한들

십자가는 구원의 수단이고 승리의 십자가이며 하느님 영광의 상징이기에

슬퍼하거나 애닯아 하지 않는다. 인간 예수에 대한 조명이 없는 셈이다.


다시 치마부에의 십자가로 돌아와보자.

전체적으로 비잔틴적이고 중세적으로 보이기는 한다.

몸의 형태가 이후 나타나는 조토의 십자가 모양에 비해 아직 진화하기 전이다.

하지만 미간이 찡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고, 눈과 입술을 다물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예수님은 산다미나노 십자가의 예수님과 분명 다르다.

성모님과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고통에 아파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향으로,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완전하시고 모든 것이 가능하시며 인간이 범접할 수 없던 분에서

우리와 같이 더불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해 있다.

프란치스코에서 시작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조명, 르네상스의 시작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잠시 조토를 살피고 가자.

단테가 치마부에의 시대는 갔다 조토의Giotto di Bondone 시대다 라고 언급했던 그 사람이다.

우선 우측의 십자가부터 보자.

치마부에의 십자가와 대략 비슷하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하중이 아래로 쏠리는 것을 표현했고, 갈비뼈와 복근부분의 명암과 질량감, 숙연함 등에서 차이가 있다.

우측의 프레스코화는 파도바 스크로베니 성당에 있는 Lamentation이라는 작품이다. 1305년.

돌아가신 예수님을 애도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주름진 미간과 일그러진 턱끝 표현이 있는 성모님,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는 천사들 하나하나.

인간이라는 요소를 불어 넣고 있어 그는 비잔틴적 요소를 갖는 치마부에를 넘어서

조토는 르네상스를의 발판이 되는 피렌체 학파의 선구자라는 평이 붙는다.


비잔틴적 요소에서 인간이 결부된 치마부에를 살펴봤다.


자료는 구글을 검색했고

특히, 그림읽어주는 수사 4편과 11편을 많이 참조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vE-XiS8nXk

https://www.youtube.com/watch?v=5NbViwO3C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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