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이창용 강사의 빈센트 반 고흐

haghiasophia 2018. 11. 28. 23:56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에 있는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는 부분이 떠올랐다.


28세에 그림을 시작하여 37세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900점의 유화를 포함한 2000점의 그림을 그린 화가.

그중 죽기 3개월전 딱 한점의 그림만 팔았을 뿐, 그것도 동생의 친구에게, 평생 동생의 후원에 의지하여 가난하게 살았던 화가.



수요인문학 콘서트 이창용 미술사 강사의 한시간반 고흐의 삶과 그림에 대한 강의를 듣는 동안 그의 고되었던 삶이 왜 그리 아프게 다가오던지.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300년만의 장대한 유성우를 보고 그렸던 Starry Night(상단 우측)

고흐 특유의 색과 선으로 그려진 큰 작품으로만 알고 있었었는데

그의 힘든 삶이 고통이 흔들리는 별빛으로 투영되었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는 그림이 되고 말았다.


1890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6개월후 그의 후원자였던 동생마저 세상을 뜬다.

고흐가 무척이나 미안해 했을 제수씨인 요안나는 굳게 결심을 하고

고흐의 전시회을 열어가기 시작하는데 12년이 지난 1902년 6월 전시회에서 고흐의 전시 작품중 절반이 팔려나가면서

드디어 고흐는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128년이 된 지금은 최고의 작가중 한 사람으로 알려졌고. (죽어 영광이라서 더 안쓰러워 보였고)

고흐가 유명해지자 요안나는 더 이상 그림을 팔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아들에게 그림을 물려주고 세상을 뜬다.

아들의 이름도 똑같이 빈센트 반 고흐였다.

그는 고흐의 작품을 죽기 전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네덜란드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 340점과 고흐와 테오의 서신 860통을 모두 기증했다고 한다.

참고로 고흐의 '가셰박사의 초상' 작품이 199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8,250만불에 거래되었다고 하니

340점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

조카 고흐는 프랑스 떼제베의 1세대 엔진을 만든 실력있는 엔지니어였다.


또, 요안나가 전시회을 열어 고흐의 그림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헬레네 크뢸러 뮐러라는 사람이 고흐의 작품 100여점을 구입했었고,

이 사람이 죽으면서 네덜란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탄생한다.

여기에 그녀가 구입한 고흐의 작품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또,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82번방도 고흐를 위해 꾸며져 있다고 했다.


고흐는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1882년경 시엔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가족들의 심한 반대와 동생 테오의 후원 중단에 사랑하는 여인과도 헤어지고.

이 여인은 6개월후 투신했다고 한다.


이후 몽마르뜨로 옮겨가서 여러 화가들과 교류도 하는데

여전히 그림을 팔지 못하고 가난한 생활.

이어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의 전성기동안 많은 그림을 그리던 시기

이후 정신병원

그리고 죽기전 있었던 오베르 쉬르 (72일간 있으면서 96점을 그렸다고 전해짐)


그가 가장 잘 그렸다고 동생 테오에게 최소 500프랑은 받고 팔아달라고 했던 그림이 꽃이 핀 복숭아나무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아를에 있을 때 3개월간 생활비가 끊겼다가 다시 요안나가 아주버님의 성공을 기원하는 편지와 함께 후원금을 보냈을 때 행복함에 네시간만에 그린 그림이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보다 그의 삶에 가슴 아팠던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