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계몽주의 이후 250년 강의를 듣고

haghiasophia 2018. 11. 3. 23:37

오늘 오후 강남역 근처 위플레이스에서 문성준 선생님의 '계몽주의 이후 250년'이란 강의를 들었다.

잊지 않고 참고차 정리한다. 잘 모르는 게 많아 내용이 많이 거칠다.

강의 중 잠깐 아름다움에 대해 리얼(Real)이 아름다운지 가짜가 아름다운지 질문할 때

가짜가 아름답지 않나 잠시 생각을 해봤다.

아름다움은 진/선/미의 서로 다른 개념이 녹아 있는건데

파리스의 사과에서 미의 여신으로 경합하는 아테나와 헤라, 아프로디테의 경우

아테나는 이론적 이성으로 진리, 헤라는 실천적 이성으로 선, 아프로디테는 제작적 이성으로 미를 뜻한다고 다른 강의에서 정수경 교수는 얘기했었다.

내가 가짜가 아름답지 않나 생각했던 건 오리지널이 아름답지 않다라는 생각보다는, 오리지널에 손을 일부 대야 더 아름다와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위의 사진은 시대에 따른 구분인데, 시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뀐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 하단은 그 시대에 볼 수 있던 미술 작품인데, 인간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자기 시대에 속해있다(앙리 마티스)는 말에서처럼 예술가도 그 시대의 철학 사상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프랑스 루이14세(1638~1715) 시절에 프랑스 왕립 예술 아카데미(1648)가 세워졌고,

루이14세의 신뢰를 받는 샤를 르브룅(1619~1690)이 왕립 예술 아카데미를 주도했다고 한다.

주도했다는 말은 살롱전에 출품되는 작품을 심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로제 드 필(1635~1709)와 형태가 우선인지 색이 우선인지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고 한다.

샤를 르브룅은 '티치아노가 색채를 위해 진리를 희생시켰다'고 했고

티치아노는 '색채야 말로 회화의 고유점이다. 색채 없는 형태는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데아가 형태라는 생각이 그 시절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고 한다. 티치아노의 색채가 참 좋다.


그리고 이 논쟁은 니콜라스 푸생과 루벤스의 논쟁으로 다시 이어졌다고 한다.

계몽주의 이후 이성주의와 낭만주의 사조가 나왔고

이런 논쟁을 거쳐 낭만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했다고 한다.

낭만주의는 감각/감정을 중시하는 드라프루아, 제리코 계열

자연을 중시하는 프리드리히와 터너 계열

영성을 중시하는 윌리엄 브레이크 계열로 분화되었다고 하고.


계몽주의에서 중요한 철학자인 장자크 루소는 알 수 없는 그 무엇(Je ne saii quoi) 즉 열망 우울 비합리성 죽음 미지의 것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했는데

낭만주의에서 그 모순성이 표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낭만주의 조차 하층민 또는 피해자 시각에서 작품을 그리는데 그 시각조차 왜곡된 시각일 수 있었다는 거다.

이를테면 남자는 야만성을, 여자는 동양성을 표현하는 등

감성으로 계몽활동을 하려하는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그 한계는 이후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모더니즘 회화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모던이란 현재인데 이는 이전과 다름을, 다시 말하면 과거와 단절되는 다름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즉 상대적 개념이라는 건데

코스탄티노플을 세웠던 콘스탄티누스(좌측)는 그리스와의 다름을 선언했고

고딕 양식(중간)은 이전 로마네스크 양식과의 다름을

르네상스는 중세와의 다름을 보여주었다.


미술사조에서 모더니즘에 해당하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둘은 계몽주의에 반발하며 왜 가르치는 게 너냐 하며 사실주의는 내용에 반발했고, 인상주의는 형식에 반발했다고 한다.

먼저 사실주의. 그 배경을 보면

나폴레옹3세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는데 예술과 와인이 주요한 품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술 작품을 선정하기 위한 살롱전에 무수한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이 중 꾸루베가 참가했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떨어진 쿠르베는 '내 그림을 검열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 진정한 역사를 가르치려면 예술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하며, 살롱전이 벌어지는 건물 앞에 위의 두 그림을 걸고 리얼리즘관을 운영했다고 한다.

당시 아카데미에서는 주제에도 위계가 있었다고 한다.

역사(성경,고전)가 우선이고, 초상화, 풍경, 정물의 순이었다고 한다.

1855년 이때는 1848년 2월 혁명이 있었고, 또 공산당 선언이 있었던 때인데

그 전까지의 역사는 왕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사실주의에서는 주인공을 삭제하게 된다.

오르낭의 매장이라는 우측 그림에서는 관도 보이지 않는다.

통상적인 그 당시 그림이라면 영혼의 승천을 위해 그림도 수직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Real이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Real(중요도 가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 Real을 누가 정하는가에 있었고 그 Real은 정해져 있어 왔다. 플라톤은 저세상이 리얼이라 했다 하고.

그런데 Real은 가치를 의미하게 되는데

쿠르베는 아름다움 Real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고전은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고

모던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된다.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에 가까운 쿠르베는 인민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쿠르베로 인해 낭만주의가 매장되었다고 한다. 쿠르베로 가치가 바뀌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것으로, 다시 아름답게 보이는 것으로. 


사실주의가 내용을 바꾸었다면, 인상주의는 형식을 바꾸었다고 한다.

춘화에는 고띠에가 상징하는 순종과 올랭피아가 상징하는 독립이 있다고 한다.

마네(1832~1883)이 그린 올랭피아

이 그림은 대상에서 독립적이라고 한다.

에밀 졸라는 위의 그림에 대해 고양이가 거기에 그려진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그런 형태와 색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상으로서의 사실이 아닌 그림으로서의 사실을 이야기하며 회화의 독립성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모네가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과 고흐의 탕기영감의 초상 배경에는 일본 우키요에(도쿠가와 막부시절부터 메이지유신 이전까지의 일본 민중예술)가 등장하는데

우키요예는 색이 자연색과 다르며, 형태와 원근법, 해부학을 사용하지 않았다.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의 우키요에 작품을 접한 당시 화가들에게 던진 화두는...

이제까지의 그림은 대상을 복사하여 재현하는 것이었는데

인상주의는 대상 자체에서 독립하려 했었기에, 이미 독립한 우키요에는 배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


인상주의는 대상과의 단절을 추구하면서,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만 그리면 되었고

해부학 같은 것이 필요없었다.

이미지만 그리면 되었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되었고, 본질보다 표면이 더 중요했고,

그래서 빠르게 변하는 수면이나 빛, 설원, 흰옷 같은 소재를 선호했고

해부학이나 소묘를 안배웠다고 한다.

재현representation이 선이 중심이고

표현expression은 색이 중심

인상주의는 기존 문법을 해체하며 이후 후기 인상주의로 이어졌다고 한다.

세심하고 영구적이기 위해 과학책을 읽고 분석하며 점묘법으로 세상을 바라본 쇠라. (그랑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점묘법에서는 색을 섞지 않고 보는 이의 눈에서 혼합이 되게 한다. 원색을 쓴다.


세잔은 도형으로 재해석을 한다. (견고한 세계 새로운 시각)

고흐는 색과 선으로 재해석을 하고 (미래의 화가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색채주의자)

고갱은 상징으로 표현을 했다고 한다.(상징주의 미술학교의 교장)


이후 마티스가 등장해서 색채와 형상에서 해방된다.

피카소가 이어 등장한다.


하단은 M0MA 초대관장 알프레드 바가 그린 계보

2차대전 당시 페기 구겐하임이 유럽의 초현실주의자들을 미국으로 많이 데려온다.

그리고 이들은 사라진다.

유럽에서 새로운 사조들을 이끌던 이들은 공개적으로 사회적인 표현을 하고 정치적 실존주의를 표방했는데

미국에 오면서 개인의 자유와 개인적 실존주의 문화에 접했던 것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미국은 의식적으로 잭슨폴락을 띄운다.

All over drip painting 방식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은 상하좌우가 없다.

원근법도 없다.


앤디워홀, 리헤텐쉬타인을 거치며 대중예술 대량 생산의 Pop Art로 넘어간다.

극사실주의. 대상의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의 이미지

오리지널리티의 파괴

복제하고 에디션 번호와 서명이 없이 보증서만 제공한다.

재현의 예술은 이데아가 있는데 워홀은 원본을 없애며 재현의 개념도 없앴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면 재현의 파산


이후 미니멀리즘

뒤샹의 샘에서는 재현이 아닌 그 자체를 얘기한다.

제프 쿤스는 예술이 관람객에 속한다고 역설한다.

예술가의 죽음으로 독자가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