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마르키아누스

haghiasophia 2018. 4. 1. 00:36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408년 7세의 나이로 단독 황제가 된 후 450년 낙마로 사망할 때까지 42년간 동로마제국을 통치했다.

앞의 글 테오도시우스 성벽, 테오도시우스 법전이 그의 치적이며,

431년 에페스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의 이성설을 이단으로 판명했다.

외치와 관련해서는, 초기에는 사산조 페르시아 황제 야즈데게르드 1세에게 후견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여, 평화를 지켰고,

421년 페르시아 바흐람 5세의 침략과 442년 공격은 격퇴했다.

하지만, 훈족에게는 434년 700파운드의 평화유지비, 442년에는 일시불로 금 6000만 파운드, 매년 2100파운드의 공납금을 바쳤다.


그의 뒤를 이는 왕이 마르키아누스다.(450~457, 출생 392)

그는 트라키아 출신의 직업군인이었고, 군의 고위직을 거쳐 원로원 의원으로 있었다.

왕위의 정통성을 잇기 위해

순결 서약을 한, 트라키아누스 2세의 누이 풀케리아와 형식상의 결혼을 했고,

이로 인해 마르키아누스는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 된다.

왕위 계승후, 훈족에게 공물로 바치는 공물을 폐지한다.

위험이 큰 결정이었으나, 다행히 아틸라가 453년 사망하면서 무사히 넘어간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를 열어, 에우티케스가 주장한 그리스도는 신성만을 갖고 있다는 단성론을 단죄한다.

그럼에도 시리아나 이집트 주교들이 받아들이지 않자, 지방 총독들도 50파운드의 연좌제 성격의 벌금까지 도입한다.

위의 그림은 칼케돈 공의회를 주관하는 마르키아누스 황제와 풀케리아 황비의 모습이다.


칼케돈 공의회가 열린 곳은 the church of St Euphemia였다고 한다.

성녀 에우페미아Euphemia는 칼케돈(지금의 카드쿄이) 상원의원의 딸이었다.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 첫해인 303년 순교했는데,

그 당시 칼케돈 총독은 모든 주민들에게 아레스Ares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게 하였고

이를 거부하던 에우페미아는 가혹한 고문을 받고, 사자에게 던져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림에서 사자가 성녀 에우페미아의 상처를 핥고 있다.


마르키아누스 7년의 제위기간 동안에, 동로마제국은 평화를 구가했다.

반면 서로마는 혼란기를 겪는다.

그의 죽음으로, 테오도시우스 왕조가 끝나고, 동로마도 혼란기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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