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네스토리우스

haghiasophia 2018. 3. 31. 00:04

앞의 글, 아리우스에서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알렉산드리아의 본당 신부 아리우스가

예수님을 진정한 하느님도 인간도 아니라는, 으뜸 피조물이라는 이론을 제시하였고,

니코메디아와 시리아의 고위 성직자들이 지지하면서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다고 적었다.


100년이 지난, 428년에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된다.

그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는 이성설을 주장했고,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키릴로 주교와 대립하였으며, 431년 에페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판명된다.


(이하 카톨릭 마산 주보 2015년 11월 17일자 내용)


네스토리우스는 5세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다. 페르시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안티오키아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사제가 되었다. 428년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콘스탄티노플로 불렀고 이후 주교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위격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주장했다. 신격과 인격이 독립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교회사에선 이성설(二性說)이라 한다. 예수님의 신성(하느님 모습)은 성경에서 만날 수 있지만 인성(사람모습)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육신 안에 있었고 그분의 죽음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인간 예수의 어머니는 되지만 하느님 어머니는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성이 끝나기 때문이다. 인성이 끝났기에 마리아와의 관계도 끝난 것으로 본 것이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두 위격에서 마리아는 인간적 위격만 낳았다는 이론이다.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란 호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주장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동로마 교회는 수도 콘스탄티노플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서로마와 손잡고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스토리우스 이론이 나온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주교였던 치릴로(Cyrillus)는 즉각 반대이론을 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신성과 인성으로 구별되지만 하나의 위격으로 유일하다며 반박한 것이다.

교회 분열의 위기가 느껴지자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431년 에페소공의회다. 네스토리우스 주장은 이단으로 판명된다. 예수님께는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위격으로 존재하며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심을 선언한 것이다. 네스토리우스는 황제의 명으로 추방되고 451년 이집트에서 죽었다. 이후 추종자들은 독자 노선을 걷게 된다. 7세기 중반까지 페르시아 일대에는 네스토리우파 교회가 건재해 있었다.

한편 이들은 3세기 중반 인도를 거쳐 중국까지 포교활동을 했다. 당나라 3대 임금 영락제 시절이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경교(景敎)라 불리었고 교회는 페르시아 절이란 뜻으로 파사사(波斯寺)라 했다가 대진사(大秦寺)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당나라 말기 중국 본토 한인들이 집권하자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오랑캐 종교로 분류된 것이다. 원나라 때 다시 회복되었지만 원의 멸망과 함께 소멸되었다. 한반도에도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경교가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참고로, 하단 그림은 7~8세기 중국에 전래된 경교의 성지주일 전례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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