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 키벨레 여신에서 비잔틴 시대(BC7C~AD2C)의 사람들이 올림피아 신들과 키벨레 여신, 이집트의 세라피스 신을 숭배했다고 해서 세라피스 신에 대해 찾아봤다.
세라피스Serapis신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집트인들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이라고 한다.
마케도니아(그리스)와 이집트의 직접적인 만남의 시작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그는 BC333년 이수스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 전투를 벌여 승리한다.
그리고 BC331년 과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를 완전하게 꺽고 페르시아의 주인이 된다.
두 전투 사이에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로 향하여, 이집트의 파라오가 된다. (관련글 http://blog.daum.net/petrus/34)
또, 알렉산더 사후의 시기는 디아도코이라고 알렉산더의 장군들이 알렉산더의 제국을 나누어 통치하게 된다.
그중 이집트를 차지하고 통치한 장군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이다. (관련글 http://blog.daum.net/petrus/35)
이 프톨레아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가 클레오파트라다. (관련글 http://blog.daum.net/petrus/111, http://blog.daum.net/petrus/112)
이집트의 세트신은 외래의 지배자들에게 배타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알렉산더나 프톨레마이오스에게는 이집트와 마케도니아 모두에게서 숭배되는 신이 필요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상이집트에서 숭배되었던 아문신을 고려했었다고 한다.
또, 동물 머리를 가진 신은 그리스 사람에게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 모양의 신을 선택했다고 한다.
세라피스는 오시리스와 아피스신을 합쳐놓은 신인데,
이집트 신화에서 Osiris는 사후세계를 심판하는 신이다.
Apis는 황소 모양의 신이다.
세라피스(오시리스)는 아내 이시스와 그들의 아들 호루스(하포크라테스)와 함께 그리스 세계에서 중시되어, 고대 로마에서도 숭배되었다고 한다.
로마의 제2차 삼두정치 시대에 캠퍼스 마르티우스(en:Campus Martius)에 지어진 이시스의 신전인 이세움(en:Iseum)에서도 세라피스를 숭배하였고,
그 후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 체함한 기적이 세라피스의 의하는 것으로 여겨져, 1세기 후반에 세라피스와 이시스 신앙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또한 플라비우스 황조 이후, 동전의 도안으로 황제와 함께 세라피스가 그려진 것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 신앙은 385년 까지 계속되었지만, 기독교도가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페움을 파괴하고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세라피스 신앙은 점차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세라피스는 곡물을 재는 용기인 Modius를 쓰고 있는데, 세라피스는 그리스 신화의 저승신 하데스(플로토)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가 들고 있는 왕홀(Scepter; 장식이 화려한 상징적인 지휘봉)은 지배력을 뜻하고
케르베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로,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 뱀의 꼬리를 가진 포유류로, 대부분 머리 셋 달린 개)를 데리고 있다.
간혹 발 밑에 뱀이 그려지는 일도 있는데, 이는 이집트 왕권의 상징인 우라에우스(하단 그림; 이집트 코브라를 형상화한 이집트이 전통복식)를 나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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