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화려한 역사의 유적들로 넘쳐나는 로마.
402년부터 르네상스 시기 전까지는 로마는 역사의 중심이 아니었다.
아래는 Paul Bril(1554~1626)이 그린 로마의 그림이다. (1580년작, 1600년작)
다음은 Claude Lorrain(1620~1682)이 1634년에 그린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Giovanni Paolo Panini(1691~1765)의 1735년과 1741년 작품이다.
파울 브릴의 작품들은 성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지는 와중에,
클로드 로랭과 지오반니 본 파니니의 작품들은 완공 이후에 그려진 그림들인데, 로마의 폐허를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싶다.
로마제국의 중심어었던 로마.
330년 콘스탄티누스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로마의 위상은 이전보다 낮아지게 되고,
395년에는 동서로마가 분리된다.
402년 게르만의 대이동이 더욱 증가하면서 호노리우스는 수도를 라벤나로 옮기기까지 한다.
이후 서로마 멸망인 476년 이전에 로마에는 410년 서고트족, 455년 반달족의 침입이 있었다.
오도아케르(476~493), 동고트왕국(493~540), 랑고바르드왕국(568~774)이 로마를 차지했었다.
오도아케르와 동고트왕국의 수도는 로마가 아닌 '라벤나'다.
535년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동고트와 전쟁을 벌여 라벤나를 복속시켰다.
그리고 751년까지 라벤나는 동로마제국의 라벤나 관구가 설치되어 운영된다. (737~740은 랑고바르드 통치)
로마는 명목상으로 교황이 통치했었다.
1095년부터 1272년 사이에는 9차의 십자군 전쟁이 있었다.
1278년 독일왕 루돌프 1세는 로마를 교황령으로 공식적으로 양도했다.
1309년부터 1377년까지의 아비뇽 유수,
1378년부터 1417년 사이의 교회의 분열 사건도 발생한다.
로마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은 1506년 착공해서(율리오 2세) 1626년에 완성이(우르바노 8세) 된다.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 천장화(1508~1511)를 그리게 한다.
1517년에는 루터가 95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신구교 대립이 시작된다.
1527년 클레멘스 7세 교황 시절에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초토화해버렸다. (사코 디 로마)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이때의 트라우마로 미켈란젤로에게 최후의 심판 벽화(1533~)를 그리게 했다고 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에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은 소피아 성당에 비하면 오두막이라는 귀절을 보고 로마의 폐허 장면들을 찾아봤다.
1200년대초이기에 위의 작품들 이미지와 큰 차이가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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