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소피아 성당의 Apse

haghiasophia 2020. 1. 19. 22:03

소피아성당의 Apse에는 성모자상 모자이크가 있다.

창문들 위에 새겨진 이 모자이크의 높이는 5m라고 한다.
높은 위치에 있다보니 그 정도까지 큰 모자이크라고 생각이 안된다.
소피아 성당이 537년에 세워질 무렵은 동로마제국의 전성기였다.
프랑스와 스페인을 제외한 전성기 시절 로마 영토를 다 확보했었다.


그러나, 622년 모함메드의 헤지라, 이후 이슬람제국의 급속한 팽창과 맞물려 성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슬람은 북아프리카 전체와 스페인, 메소포타미아와 아타톨리아 일부 지역까지 진출을 한다.
이런 배경에서 시리아 출신으로 동로마 황제가 된 레오3세는 730년에 성상 파괴를 지시한다.
이때 소피아성당은 1차로 대규모 파괴를 겪게 된다.
이후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상 공경을 재확인하면서 1차 성상파괴운동이 막을 내린다.
성화에 바치는 공경은 성인들에 대한 것이지, 성화 자체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짓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모르던 그 시기에 성상이 그리스도교의 포교를 위한 현실적인 도구이기도 했다.
아무튼, Apse의 성모자상 모자이크는 1차 성상파괴운동을 거친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소피아 성당은 성상파괴운동과 4차 십자군의 찬탈, 그리고 오스만제국 시설 모스크로의 전환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박물관이다.
그래서 성당 안내에 전시된 정교회 성당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봤다.

현재 메카 방향을 나타내는 미흐랍이 있는 그곳은 정교회 성당 시절이나 라틴 성당 시절에는 제단이 있던 곳이었다. 좌측의 그림은 정교회 성당의 제단을 보여주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정교회 국가인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있는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의 제단 사진을 덧붙였다.

Apse(제단 뒤의 움푹 들어간 곳)의 입구가 성화들로 채워져 있고 문이 있다.

또 정교회 미사 동영상도 올려본다. 벨리코터르노보의 작은 성당 미사 장면인데, 신부님들이 미사중에 성화들로 채워진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미사를 집전한다.


현재의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은 정교회 성당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537년 이후 1453년 이슬람화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기간은 정교회 성당이었다.
그리고 지금 전세계 정교회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플 주교좌 성당은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데 그 규모는 아주 미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