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부에 산토니뇨 성당이 있다. Santo Niño는 Child Jesus로 어린 예수를 뜻한다.
어린 예수는 탄생 이후 다시 성서에 등장하는 12살의 어린 예수를 말하는데,
산토니뇨 성당이 세워진 배경은 마젤란의 필리핀 발견과 관련이 있다.
마젤란은 1519년 8월 스페인 국왕 카를5세의 후원으로 스페인을 출발하여 대서양을 횡단한 후 남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다.
이후 마젤란 해협을 거쳐 1521년 4월 필리핀에 도착하게 된다.
마젤란 제도의 위치는 아래와 같이 칠레 남단과 티에라 델 푸에고섬 북단 사이에 위치한다.
마젤란이 1521년 4월 필리핀 세부에 도착한 자리에 마젤란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물론 지금의 십자가가 1521년에 세웠던 십자가는 당연히 아니다.
십자가가 있는 Pavillion의 모습이 터키에서 봤던 것과 유사한 느낌을 주었다.
아래는 1521년 당시의 십자가 그림이다.
좌측 그림은 마젤란 십자가가 있는 상단 벽화고, 우측 그림은 산토니뇨 성당 벽에 걸린 그림이다.
마젤란은 필리핀 세부에 도착한 후 세부섬의 추장 주아나 일족과 부족 800명을 카톨릭으로 개종시켰으나
도착 20여일후 막탄섬의 추장 라푸라푸와의 전투에서 사망한다.
좌측 상단이 마젤란, 옆이 라푸라푸, 아래가 라푸라푸가 마젤란을 죽이는 그림이다.
우측 동상이 막탄섬에 있는 라푸라푸의 동상이다.
라푸라푸는 침략자에 대항하여 일어선 최초의 동남아시아인으로 필리핀에서 영웅이다.
그렇다고 마젤란이 침략자로 필리핀에서 여겨지지도 않는다.
카톨릭이 80%가 넘는 나라이고, 마젤란이 카톨릭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젤란이 죽고 나니
마젤란이 통솔하던 일행은 몰루카 제도로 이동한 후 스페인으로 귀환하게 된다.
마젤란이 1504년 인도양을 거쳐 몰루카 제도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이후 대서양과 태평양을 거쳐 필리핀에 도착한 시점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코스라 사실상 세계 일주를 했다고 간주된다.
그리고 총 5척의 배와 270명의 선원으로 출발했던 탐험단은, 단 빅토리아호 1척의 배와 18명의 선원, 그리고 중간에 승선시킨 3명의 인디오만 데리고 스페인으로 귀환한다.
그런데 빅토리아호는 몰루카 제도에서 정향이라는 향신료를 싣고 귀환하는데 정향의 가치가 높아 모든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았다고 한다.
3년간의 여행에 대해서 항해사 프란시스코 알보가 항해일지를 남겼고,
피가페타는 서간문 형태로 마가야네스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라는 체험담을 발행했다고 한다.
이후 44년이 지난 1565년 스페인은 미겔 로페스 레가스피를 필리핀에 보내 식민지화 한다.
이때가 1565년 4월로, 당시 Adreas de Urdaneta 신부가 성당을 짓게 되는데
그해 5월, 마젤란이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Santo Nino(Child Jesus)의 그림이 발견된다.
좌측 상단과 우측은 산토니뇨의 이미지가 발견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고, 좌측 하단은 성당을 건설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1565년에 목조로 성당이 세워지고, 1566년에 화재로 다시 지어지고, 1628년에 화재가 난 후에는 석재로 다시 지어진다.
그리고 1735년에 현재의 성당이 지어졌다고 한다.
성당 전면은 이슬람과 로마네스크, 신고전주의 양식이 섞인 양식이고
종탑은 이슬람식 돔 모양과 삼각형의 뾰족한 모양이다.
산토니뇨, 어린 예수는 필리핀에서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처음 접했던 곳은 야외 제대. (좌측 그림)
십자가 가운데에도 어린 예수의 그림이, 제대 좌측에도 어린 예수의 상이 세워져 있다.
우측은 산토니뇨 성당의 성물판매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얼마나 많이 팔리는 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림에도 많이 등장한다.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세부 산토니뇨 성당의 어린 예수상을 필리핀 카톨릭의 시작과 성장을 상징하는 심볼이라고 선언하셨다고 한다.
문득 그리스에서 봤던 작은 교회 모형이 생각났다.
거리 곳곳마다 있었던 정교회의 모형처럼 (좌측)
필리핀 사람들도 어린 예수의 그림이나 모형을 집집마다 모시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우측의 문양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양인 쌍독수리다.
산토니뇨 성당 벽에 있는데, 2015년 만들어진 것으로, 1565년에서 450년이 지난 시점, 1965년에서 50년이 지난 시점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쌍독수리가 눈에 굳이 들어오는 이유는, 마젤란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5세의 후원으로 필리핀까지 오게 되어서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서였다.
카를5세는 합스부르크 가문 최대 전성기의 왕으로 1506년부터 1556년까지 이런 저런 나라의 왕 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있었다.
카롤루스 대제와 나폴레옹 사이의 1000년의 시간 동안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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