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호라티우스의 삼형제, 다비드

haghiasophia 2019. 2. 10. 15:27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그림이다.

작가는 자크 루이 다비드.

1784년 프랑스 황제 루이 16세가 주문하여 제작된 그림으로 1785년 파리의 살롱전에 전시되어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그 당시의 주류 그림은 귀족들이 호화스러운 옷을 입고 산책하는 로코코풍이었다는데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신고전주의에 속하는 이 그림은 5년후인 1789년 발생하는 프랑스 혁명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나 할까.


이 그림은 기원전 7세기 로마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로마 건국의 주역인 로물레스와 레무스는 로마 인근 알바 롱가(Alba Longe)의 공주 일리아와 전쟁의 신 마르스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로물레스는 기원전 753년 로마의 초대 왕으로 등극한다. 이때는 고대 로마로 도시국가 수준.

로물레스 시대에는 이웃에 있는 사비니 왕국을 상당 부분 흡수한다.

그래서인지 2대왕 누마 폼필리우스는 사비니 출신이다.

3대왕인 툴루스 호스틸리우스(BC673~BC642) 시대에 로마는 인근에 있던 알바 롱가를 정복한다. 알바 롱가의 주민들을 로마로 강제 이주시키고 시민권을 부여한다.


로마가 알바 롱가를 정복할 때 오랜 분쟁이 있었고, 양측은 대표 주자를 뽑아 결투를 통해 전쟁의 승부를 내기로 했다고 한다.

호라티우스 형제는 이때 로마측에 속한 인물들이고, 이들은 알바 롱가쪽을 대표해서 나오는 쿠리아티스 삼형제와 결투를 벌이게 된다.

결국 호라티우스 형제측이 쿠리아티스 측을 모두 죽이고 승리하는데, 문제는 양가가 서로 사돈지간이었다.

사비나는 오빠를 잃고 카밀라는 약혼자를 잃고 슬퍼하는 누이까지 호라티우스는 죽이게 되는 비극적인 내용으로

리우비스의 로마건국사 1권에 나오는 이 내용을 가지고 

18세기 당시 코르네유는 비극 '오라스'를 제작하여 공연하고 있었다.


다비드는 호라티우스 삼형제가 아버지로부터 검을 받고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칠 것을 다짐하는 장면을 그림의 소재로 삼으며,

그림의 우측에는 슬퍼하는 누이들을 그려 놓았다.

왕정을 무너뜨리려는 프랑스의 공화주의자들은 로마의 공화정을 동경하고 있었기에,

다비드의 그림은 절제있는 인물들의 구도와 명확한 메시지를 통해,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정치의식을 여론화 시키는데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현대 사회는 정치의식이나 도덕심이 배제된 순수미술이 대세라고 하는데

18세기 프랑스혁명 시기에 있어서는 거꾸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흐름에서

신고전주의라 불리는 다비드를 중심으로 한 화가들의 흐름은 또한 시대의 방향을 제시하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림을 찾다보니 이 그림과 관련하여 아랍어로 표시된 우표가 있었다.

Fujeira는 UAE의 에미레이트 중 하나로 두바이 동쪽 인도양에 면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고.

사우디는 지금도 왕정인데 이런 국가에서 공화정을 지향하는 그림을 담은 우표라니... 특이했다.


그리고, 같은 왕정인 프랑스에서, 그림을 주문했던 루이 16세는 당시 그의 나이 30세였다.

35세인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고,

4년후인 1793년 1월에 퇴위당하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그의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도 같은해 10월 38세의 나이로 참수당한다.

당시 프랑스 왕정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는데, 미국독립전쟁(1775~1783)에 대한 지원과 선대부터 누적된 사치의 결과였다고 한다.



호라티우스의 작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

1781년에는 왕실의 부패를 비판하는 '자선품을 받아들이는 벨리사우르스'를 그렸다.

벨리사우르스는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절의 장군으로 534년 아프리카의 반달족을 격파했고, 536년 나폴리와 로마, 538년 라벤나를 점령하는 등 비잔틴 제국의 유능한 장군이었다. 그림은 말년에 황제의 비이성적인 조치로 두 눈이 뽑히고 거지로 전락하는 장면을 그렸다.

1793년에는 '마라의 죽음'을 그렸다.

프랑스 혁명기의 자코뱅(Jacobin)을 이끌다 암살당한 마라(Jean Paul Marat; 1743~1793)를 기리는 작품이다.


그는 또 여러 그리스 로마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관련한 유명한 그림도 남겼다.


잠시 샛길로.

로마 건국의 아버지 로물레스는 로마신 마르스의 자식인 셈이다.

그리스신 아레스.

그리스에서 아레스는 같은 전쟁의 신 아테나에 비해 굳건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아보이는 신이다.

아프로디테와 바람을 피워 아프로디테의 남편이자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토스가 설치한 그물에 걸리기까지 한다.

워낙 역사상의 기록으로 아테네가 강국이어서 아테네신에 눌렸던 아레스는

그리스 북부의 신으로 순도 100%의 군신이라고 한다.

이 아레스가 로마로 가서 마르스가 되며,

그리스에서는 정의, 지혜, 평화, 공예 등의 신이었던 아테나는

로마로 가서는 미네르바가 되어 지혜의 신이 대부분 부각될 뿐이다.

이런 점을 보면, 해당 도시의 세력이 해당 도시가 모시는 신의 성격까지도 변형되고 있음을 볼 수 있겠다.


다시 호라티우스의 형제로 돌아와 보자.

기원전 7세기 고대 로마 건국 시기 국가를 위해 싸우러 가던 호라티우스 삼형제의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 왕정에서 공화정을 꿈꾸는 공화주의자에게 의미있는 소재가 되었고,

화가 다비드는 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이런 배경하에 이런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와 함께.


그리고, 현대의 미술은 이런 배경과 이야기를 배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