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와 수니파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하다보니 이슬람과 무함마드, 이후 네명의 칼리파를 언급하게 되었었다.
칼라파 알리를 기점으로 시아파와 수니파가 나뉘게 된다.
사건이 있었다.
알리의 둘째 아들인 후세인.
아버지 알리가 살해 당한 후, 우마이야 가문이 칼리프직을 독점하며 우마이야 왕조(660~750)를 세운다.
무아위야 이븐 아부 수피안은 선출로 칼리파를 뽑는 전통을 무시하고 아들 야지드에게 칼리파직을 물려준다. 세습이 된 것이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어도 칼리파가 된다고 한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만 칼리파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마이야 왕조에 접어들어서, 알리의 큰아들 하산은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와 전투를 벌여 무승부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래서 하산과 후세인 모두 메카와 메니나에 상당기간 거주했었고, 하산이 죽은 후,
사람들의 지지가 후세인에게 몰린다.
무아위야가 죽자, 쿠파의 사람들이 후세인을 초대하는데,
후세인이 쿠파로 가는 도중,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에 의해 살해 당한다.
목이 잘리고, 아들은 굶겨 죽여졌다.
이란에서는, 지금도 매년 그의 비극적 죽음을 추모하며, 후세인을 구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아슈러라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이란에 시아파가 강한 이유는
아랍의 수니파에 대한 반감도 있지만,
후세인의 부인이 사산조 페르시아의 마지막 군주인 야즈데게르드 3세의 딸인 샤흐바르누 공주였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혈통과 이슬람 무함마드의 혈통이 합쳐진 결혼이 이란의 정체성을 세워준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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