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이슬람 세력에 미친 영향

haghiasophia 2018. 2. 5. 13:21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이슬람 세력을 격동시켰다.


걸프국가들은 안보 위협까지 느꼈고, 이슬람주의 세력들은 성전을 펼칠 무대로서의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사우디 정보국은, 1980년대초 아프간 전쟁을 무슬림의 지하드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사우디 총정보국장은 미의회와 동일한 금액을 제공하는 조약을 체결했고
미 CIA는 국제 무기 시장에서 무기를 조달, 아프간 반군에 제공했다.
무슬림의 의무인 자카트를 통한 기부는 아랍 출신 무자헤딘을 양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무자헤딘(아랍어:مجاهدينmujāhidīn)은 성전(지하드)에서 싸우는 전사를 의미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게릴라 조직을 의미한다.
이후 여러 당파들이 자체 분열했고, 이중 한 분파가 급속히 성장했는데, 이 분파가 탈레반이다.

페르시아어로 학생들을 뜻하는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집권했다.
2001년 9월 11일 World Trade Center 테러가 발생하고, 그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이 지목되면서, 미국은 탈레반 정권에 대해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을 인도할 것을 요구했고, 탈레반 정권이 거부했다.
이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며 전쟁에 돌입, 11월에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게 된다.

이 기간중, 아프간으로 갔던 외국 출신 무자헤딘을 '아랍 아프간'으로 불렀는데,
이들은 아프간 전세나 승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지하드를 둘러싼 논쟁과 이합집산을 거듭한 끝에, 국제 지하디스트 단체인 알카에다를 결성하게 된다.

반면, 아프간 무자헤딘은 지하드나 순교가 아닌, 삶의 터전을 빼앗겨 전쟁에 내몰린 이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후 새로운 무자헤딘이 등장한다.
1985~1986년, 아랍 등 외국 출신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들은 미국 CIA와 파키스탄 정보부로부터 테러 전술을 받았고, 이들은 자살 테러를 천국으로 가는 티켓으로 생각하고 미국과 서방을 대상으로 테러를 구사하게 된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전세계 이슬람주의 세력들의 훈련장이 되어 버린 셈이다.

소련군은 9년간의 개입 끝에 1988년 2월 결국 철군하게 되는데, 1979년 소련의 개입에는 미국이 관련되어 있다.

전 CIA 국장 로버트 게이츠는 1996년 에 쓴 회고록 「음지로부터: 냉전에서 승리한 다섯 대통령의 숨은 이야기」에서 미국 정보기관들이 실제로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가 아닌 이미 그 6개월 전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 게릴라를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밝혔고, 2년 후 지미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 브레진시키도 프랑스 주간지「누벨 옵세르바튀르」와의 인터뷰에서 게이츠의 주장을 분명하게 입증해 주었다.
「누벨 옵세르바튀르」: 지금 당신은 이 점과 관련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가?
브레진스키 : 무슨 후회를 할 게 있는가? 그때의 기밀 작전은 기발한 구상이었다. 그 작전은 러시아를 아프가니스탄의 함정에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후회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소련이 아프간 국경을 넘었던 그 날, 나는 카터 대통령에게 이렇게 썼다. '우리는 지금 소련을 베트남 전쟁으로 몰아세우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라고.
「누벨 옵세르바튀르」: 그러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미래의 테러 집단들에게 무기와 군사 참모를 제공한 사실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브레진스키: 세계사의 전개에 있어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지 않는가? 탈레반인가, 아니면 소련 제국의 붕괴인가? 이슬람교도의 일부를 약간 동요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중부 유럽의 해방과 냉전의 종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