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본 글에,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가 로마의 집정관으로 임명되었다는 말이 있길래...
우선 서로마는 476년 게르만 용병 오도아케르(476~493)에게 멸망당했다.
클로비스 1세는 프랑크 왕국의 초대 왕으로, 메로빙거 왕조의 창시자이며, 여러 프랑크 부족을 통합하고, 서고트족, 부르군트족을 공격해서 영토를 확장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클로비스는 486년 수아송 전투에서 승리한 후 로마의 갈리아 총독이 되었다고 나온다.
아마도, 486년 클로비스는 망해 없어진 서로마가 아닌, 동로마에서 갈리아 총독으로 임명한 듯 하다.
다른 글에서는, 486년 이 시점을 프랑크 왕국을 세운 것으로도 평가를 한다.
그리고, 496년에 클로비스는 다른 게르만족과의 전쟁을 계기로 카톨릭으로 개종을 한다.
역시 나무위키에 따르면, 개종 이후, 형식적으로 동로마제국에 복종했고, 동로마 제국은 그를 집정관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집정관은 황제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자리라는데, 좀 의아한 설명이다. 갈리아에 국한되었다고 봐야 하나...
앞의 글에서 오도아케르를 잠시 언급했지만,
오도아케르는 로마사를 통틀어 봤을 때, 서로마를 멸망시켰다고 표현하지 않고, 서로마의 왕이 바뀌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동고트족에게 멸망했다기 보다, 내부의 장군이 반란으로 나라를 탈취했다고 보는 것이 서유럽의 시각에서 덜 민망해서였을까...
암튼 이렇게 서로마는 갔고, 동로마에서 클로비스를 집정관으로 임명했다는 것 자체가
서로마 멸망의 의미가 흔히 생각하듯 동로마는 동쪽에 고립되었고, 서로마 지역은 무주 공산으로 게르만끼리 치고 받았다는 것이 아닌
동로마가 서유럽 전체까지도 자신의 관할로 간주하고 운영하려 했다는 반증 같아 보인다.
그리고 프랑크 왕국과 메로빙거 왕조. 짧게.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는 486년부터 751년까지 있었다.
클로비스 다음으로, 732년에 투르 푸아티에 전투가 중요하다.
카롤링거 왕조는 751년부터 843년까지 있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875년, 동프랑크는 911년, 서프랑크는 987년 멸망)
카롤링거 왕조에서는 샤를마뉴 대제(768~814 2대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 왕, 800~814 초대 신성로마 제국 황제)가 제일 유명.
'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카테고리의 다른 글
League of Legend (LOL) (0) | 2017.12.20 |
---|---|
카파도키아 트래킹 : 스타워즈 (0) | 2017.12.20 |
훈족과 아틸라, 샬롱전투 (0) | 2017.12.19 |
앗시리아의 도장 Assyrian Seal (0) | 2017.12.18 |
로마 제국의 지도 변천사 (0) | 2017.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