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동로마 황제 콘스탄스 2세

haghiasophia 2018. 2. 13. 21:51
무함마드(622~632)에 의해 이슬람이 시작되고, 1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 (632~634), 2대 칼리파 우마르 (634~644)의 시기에 해당하는 동로마 황제는 헤라클리우스(610~641; http://blog.daum.net/petrus/121)였다.


이후 콘스탄티노스 3세가 제위에 올랐다가 석달만에 죽었고, 그의 뒤를 이은 헤라클로나스도 시민들의 반대로 물러난 후,

콘스탄티노스 3세의 아들인 콘스탄스 2세(641~668)가 11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콘스탄티노스 3세 시절 동부군 사령관에 부임한 발렌티누스가 콘스탄스 2세의 즉위를 도왔다고 한다.

그의 치세 기간은, 2대 칼리파 우마르 (634~644), 3대 칼리파 우스만 (644~656), 이후 마지막 정통 칼리파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656~661), 그리고 무아위야 1세로 시작되는 옴미아드(우마이야) 왕조와 부딪치는 기간이었다.


642년에는 우마르 칼리파의 군대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다.

645년 우스만 칼리파 시절에, 알렉산드리아를 탈환했지만, 646년에 다시 내어줬다.

645년 아르메니아, 647년 카파도키아를 침략당했고, 아프리카가 648년에 공격을 받았다.

648년 프리기아가, 649년에는 크레타섬이 공격 받았다.

650~651년에는 킬리키아를 포함한 소아시아 남부가 공격 받았다.

이에 콘스탄스 2세는 시리아의 총독 무아위야에게 황금을 주고 휴전 조약을 맺었다.

또, 656년에는 무아위야가 로도스섬을 공격했을 때, 콘스탄스는 동로마 선박 500척이 침몰당하는 큰 패배를 당한다.

마스트 전투 혹은 마스트 해전이라 불리는데,

물론 아랍이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로마군이었던 이집트군이 활약을 한 것이지만,

수백년간 지중해는 로마의 바다였었는데, 이 전투를 계기로 지중해의 주도권이 바뀌는 상황이 된다.

우스만 칼리파는 여세를 몰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려 했으나,

이집트의 불만 세력들에 의해 우스만이 살해당하게 된다.


한면, 645년 아르메니아가 아랍에 넘어가면서, 아르메니아 토후들은 아랍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654년에는 아르메니아 전역이 아랍의 영향력하에 들어간다.

5년후인 659년 메디나에서 칼리파 알리에 반대하는 낙타 전투가 벌어질 때, 콘스탄스는 아르메니아로 진격해서

무아위야에게 연공을 받고, 아르메니아 지역을 회복하고 평화 조약을 맺는다.


콘스탄스는 단성론과 타협을 통해 제국의 신앙을 단일화 하려 했고, 로마 교황 마르티노 1세가 649년 라떼라노 공의회를 열어 반발하였다.

653년 동로마의 라벤나 총독 테오도로스는 교황을 체포한 후 콘스탄티노플로 송환한다. 

교황은 크림반도에 유배되고 655년 사망한다.


660년 콘스탄티노플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수도를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로 옮긴다.

663년에는 롬바르디아군과 전투를 벌여 패한다.

그해 말, 동로마 황제로서는 처음으로 로마를 방문, 비탈리아노 교황을 만난다.

그리고, 판테온을 비롯한 옛 건축물의 장식과 청동을 떼어서 콘스탄티노플에 보낸다.


668년 그는 시라쿠사 궁전에서 암살당한다.


참고로, 그는 642년에 마지막 집정관Consul직을 수행한 황제였다고 한다.

실제 공화정은 600년전에 이미 끝이 났었어도, 로마의 황제들은 한번 이상을 집정관직을 유지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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