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된 적은 없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황제를 뜻하게 되었다는 카이사르.
카이사르 이전에는 한니발과 관련된 포에니 전쟁이 있었고, 그의 이후는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시대가 된다.
포에니 전쟁은 앞의 글 '한니발 그리고 로마의 확장'(http://blog.daum.net/petrus/53)에 사진과 지도 자료를 올려놨고,
이 글에서는 카이사르 자료를 다루려고 한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갈리아 전쟁(BC58~51)에서 알레시아 공방전이 유명했다. 갈리아 부족을 지휘한 베르킨게토릭스를 어렵게 무찌르고
전리품을 챙겨 로마 최대의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BC49년에 루비콘강을 건넌다.
루비콘강은 로마 본토와 속주를 나누는 강인데, 무장을 하고 로마 본토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카이사르는 무장을 하고 루비콘강을 건넌다.
위의 연설은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널 때 한 얘기다.
그리고, 1차 삼두정치의 한축이었던 크라수스는 그 전에 죽고, 남아 있는 폼페이우스와 파르살루스에서 일전을 치른다.
이후, 이집트를 BC47년에 정복하고, 클레오파트라와 2주를 같이 보내고 로마로 복귀한다.
카이사르는 늘어난 로마 영토에 따라 속주를 18개로 개편하였다. (법무관을 8명에서 16명으로, 재무관을 20명에서 40명으로)
원로원을 600명에서 900명으로 늘렸다.
갈리아 속주민에게 로마시민권을 줬다.
의사와 교사에게 시민권을 제공하고, 군인의 봉급을 70데나리우스에서 140데나리우스로 2배 늘렸다.
구 로마력의 오차를 간파하여 율리우스력을 도입했다. 오차를 시정하느라 BC46년은 무려 445일이나 되었다.
카이사르의 포룸을 건설하였으며, 로마 최초의 국립도서관과 쿠리아 율리아를 세웠고, 바실리카 율리아와 마르켈루스 극장을 건설하였고, 세르비우스 성벽을 파괴하여 도시를 확장했다.
세르비우스 성벽 파괴는 로마가 진정한 국제화된 제국이 되는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그리고 최초로 동전에 자신의 얼굴을 새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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