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피렌체의 르네상스

haghiasophia 2022. 2. 13. 16:34

조르조 바사리는 1550년 '더 위대한 화가/조각가/건축가들의 삶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란 책을 썼다.
Le Vite De Piu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t Architettori, Giorgio Vasarri

그는 미켈란젤로의 제자이기도 했는데, 당시 피렌체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책을 서술했다.

이 책에서는 14세기 치바부에부터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다뤘다.

피렌체가 중심이다보니 북유럽 기반의 얀 반 에이크 같은 화가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태리어로 Rinascita인 부흥은 불어인 르네상스Renaissance로 알려져 있다.

1855년 프랑스 만국박람회 당시 프랑스는 와인과 예술품, 그리고 식민지의 문화상품들을 홍보했었다.

이 때 쥘 미슐레 Jules Michelet가 자신의 저서인 '프랑스사'에서 Renaissance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후 광범위하게 쓰이게 된다.

 

14세기 유럽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백년전쟁1337-1453이 벌어지고 있었다.

백년전쟁이 끝나고 영국(잉글랜드)은 장미전쟁1455-1485이라는 내전이 벌어진다.

15세기 중반인 1453년 오스만제국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켰고, 1529년 1차 오스트리아 빈까지 진출했었다.

 

한편, 1077년 카노사의 굴욕(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파문), 1122년 보름스 협약으로 정점에 올랐던 교황권은, 1309-77년 사이의 아비뇽 유수, 이후 이어진 교황권의 분열 1378-1417에 이어,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거쳐 1527년 사코 디 로마의 시기까지 위상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유럽 전역은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영국 들이 봉건 사회에서 절대 왕정으로 넘어가는 전쟁들이 이어지는 사이에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비교적 발전을 하게 되는데, 당시 피렌체도 방직 산업과 금융업을 통해 번창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베네치아나 밀라노, 시에나, 나폴리 등에 비해 피렌체는 문화가 꽃피는데 메디치 가문의 역할이 눈에 띈다.

 

조반니 세례당의 북문과 동문이 기베르티에 의해 1403년부터 1452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도나텔로의 다윗상도 만들어진다.

건축에서는 100여년간 마무리하지 못했던 두오모 대성당의 돔 건축이 메디치의 주도로 1419년부터 브리넬리스키에 의해 이뤄졌다.

미켈로초에 의해 산마르코 수도원과 메디치궁이 만들어진다.

 

브루넬리스키가 원근법을 도입했다하는데

마사초의 작품 성삼위일체는 원근법을 확연히 알게 있게 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이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도 나온다.

 

1429년 피렌체 공의회를 유치한 메디치가는 1443년 산마르코수도원 내에 메디치 도서관을 설립하고, 더 나아가 1459년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고대 그리스어로 된 플라톤의 저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토론을 했다고 하고, 인문학, 수학, 의학, 공학, 건축 혁신의 근간이 되었으며, 예술가들을 통해 작품에도 반영되었다고 한다.

로렌조 디 메디치가 세상을 떠난 1492년은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이기도 하다.

 

이후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과 백여년간 잦은 전쟁을 치르게 된다.

1차 이탈리아 전쟁때 메디치가는 피렌체를 떠나게 되어 3차 이탈리아 전쟁 끝 무렵에 다시 복귀를 하게 되고,

5차 이탈리아 전쟁때도 추방과 복귀를 반복했었다.

 

이하 이탈리아 전쟁 요약

1494년-1498년 이탈리아 전쟁 : 프랑스의 샤를 8세가 나폴리 왕국까지 진출

1499년-1504년 이탈리아 전쟁 : 프랑스의 루이 12세가 밀라노 침공, 이후 스페인과 나폴리 점령, 이후 스페인이 프랑스에 승리

1508년-1516년 캉브레 동맹전쟁 : 초기에는 교황 율리오 12세가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과 베네치아 공격, 

이후 교황은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와 전투하다 어렵자 다시 프랑스와 동맹. 여러 전투후 북이탈리아 전체가 프랑스와 베네치아에 항복

1521년-1526년 이탈리아 전쟁 :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가 1519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되자 프랑스 영토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스페인, 독일, 플랑드르 등으로 둘러쌓였고, 프랑스와 1세가 1525년 파두아 전투에서 사로잡혔음. 이때 프랑스는 오스만제국과 동맹

1526년-1530년 코냑 동맹전쟁 : 클레멘스 7세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를 상대로 프랑스,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의 동맹으로 맞섰으나 사코 디 로마로 교황의 패배, 이후 피렌체는 공화정이 폐지되고 귀족정 전환(메디치). 이탈리아 반도는 카를 5세의 영향하에 놓였음

1536년-1538년 이탈리아 전쟁 : 밀라노 공국 상속과 관련 카를 5세와 프랑수아 1세간의 전쟁. 오스만의 참전으로 휴전

1542년-1546년 이탈리아 전쟁 : 1541년 오스만이 헝가리 침공. 프랑수아 1세는 오스만과 동맹을 맺고 카를 5세와 전투

1551년-1559년 이탈리아 전쟁 : 프랑수아 1세의 뒤를 이어 앙리 2세가 카를 5세에 전쟁 선포. 프랑스는 토스카나에서 패배. 카를 5세 은퇴후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 각각의 국왕 체제, 영국은 프랑스에 칼레 빼앗김

100여년의 이탈리아 전쟁을 통해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위상이 크게 하락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들은 프랑스를 압도. 이후 프랑스는 프랑스 종교전쟁의 수렁으로 들어감

 

 

참고 글

https://brunch.co.kr/@ac5feed12284416/9

https://m.blog.naver.com/amapola27/221793905826 메디치가 메디치궁 유명한 동방박사의 행렬 프레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