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슈나벨 감독은 2014년 프랑스 오르셰 미술관에서 열렸던 반 고흐 전시를 관람했다.
그리고 그는 '고흐, 영원의 문에서 At Eternity's Gate'라는 영화를 2018년 선보였다.
고흐를 다룬 여러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슈나벨 감독이 화가로서 화가를 어떻게 말했을까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흐의 나레이션이 참 많다.
영화의 시작도 그렇다.
'나도 좀 어울리고 싶다. 함께 앉아 한잔하며 무슨 대화든 나누고
내게 담배 한 대 건네줬으면. 와인 한 잔이나 아니면 안부라도 물어줬으면
그러면 대답하고 이야기 나눌텐데
그리고 가끔은 스케치를 그려 선물해해주면 받고 어딘가에 두겠지 ...'
당시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지내는 외로움이 뚝뚝 묻어난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고흐의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장면 하나 파리. 영화 초반 까페에 걸린 고흐의 그림을 치우라는 주인
'이것들 다 치워요. 당장.
다른 진짜 화가들과 그룹전을 한다더니 당신 거 밖에 없잖아. 다른 화가들거는.
이것들 보러는 아무도 안와요. ...'
고흐가 진짜 화가가 아니었다. 그 주인에게는.
장면 둘 아를. 소풍 나온 학생들이 고흐가 나무 뿌리 그리는 것을 보던 선생님
'요즘 화가들은 이상한 것들을 그린단다. 전엔 잘 그리는 화가들도 있었는데 이젠 통 없어.
개나 소나 화가랍시고. 뿌리를 그린다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아이들이 고흐에게 돌을 던진다.
장면 셋 생 레미 요양원. 담당 신부가 고흐와 이야기한다.
고흐의 1889년 작품 Field with Two Rabbits을 보며
이게 그림이냐며, 정말 솔직히 당신이 화가냐며 질문을 던진다.
그는 확신에 찬 고흐의 말에 도저히 모르겠어 한다. 불쾌하고 흉한 그림이라고.
슈나벨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사람들이 기록했던 반 고흐가 아닌, 그의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느꼈던 것을 그대로 반영하려 했다. 화가의 눈으로 고흐 작품의 생명에 관한 영화를 찍으려 했던 거 같다.
빈센트 반 고흐 역을 맡은 윌렘 대포(이 영화로 70회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는 반 고흐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슈나벨 감독에게 그림을 배웠다고도 하고
줄리언 슈나벨 감독과 윌렘 대포, 그리고 프랑스 화가 에디뜨 보드랑의 미술팀은 반 고흐의 그림 130점 이상을 그렸었다고 한다. 에디뜨가 복제하면 줄리언이 자신의 실험적 작업을 발전시키는 식으로..
고흐가 생 레미 요양원으로 가는 장면 이후에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의 고흐에 대한 평론이 나온다.
이 부분부터 나오는 여러 장면들이 슈나벨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말 같았다.
'때론 깎아 놓은 사파이어나 터키석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 아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느낌의 빛이 끝없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아래
무겁고 타는 불꽃 같은 분위기에 불안을 조성하는 이상한 모습의 자연이 있다.
한순간 완전히 현실적이지만 거의 초자연적이기도 한
자주 과장된 자연 안엔 모든 게
존재와 사물, 그림자와 빛, 형채와 색이 격렬한 의지와 함께 솟구쳐 오르다가
가장 격양되고 높은 음으로 자신의 본질을 부르짖듯 노래한다
소재와 자연의 모든 것이 열광적으로 뒤틀려있다.
형태는 악몽이 되고 색은 불꽃이 되고
빛은 큰불이 되고 삶은 끓어오르는 열이 된다.
이것이 고흐의 특이하고 강렬한 작품을 처음 볼 때 망막에 남는 인상이다.
아름답고 위대한 전통적인 예술과 얼마나 다른가?
감각을 이토록 직접 자극하는 작가는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그의 생물에 대한 진심의 향기부터
물감이라는 재료를 통해
이 강건한, 진정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는 최고의 위치에 우뚝 섰다.'
생 레미 요양원의 치료실 같은 곳에서 퇴역 군인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화가들은 미쳤냐는 질문에 군인들은 미쳤냐는 대화를 이어간다.
뭘 그리냐는 질문에 '빛'을 그린다고 고흐는 답한다.
생 레미 요양원의 신부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가끔 화가 날 때는 밖에 나가서 풀잎이나 무화과 나무 가지를 본다고 대답한다.
진정이 되는데, 신은 자연이고 자연은 아름다움이라 말한다.
신이 준 유일한 재능이 화가라 하고. 타고난 화가라고.
왜 신은 흉하고 불쾌한 그림을 그릴 재능을 주셨을까요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면 신은 비참하게 살라고 재능을 주셨을까 하는 질문에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거 같다고 답한다.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화가로 만든 것 같다고.
씨를 뿌리기 위해 살지만 수확은 당장 없은 이치와 같이
자신의 장점과 단점으로 그림을 그린다 한다.
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거냐는 질문에
자신이 지구의 유배자나 순례자 같다는 말을 하며
예수께서 네 마음을 보이는 것에서 돌려 보이지 않는 것으로 향하라 하신 성경 구절을 이야기 한다.
예수님도 살아 생전 전혀 알려지지 않았음을 로마 백부장이 아내에게 쓴 편지 내용을 통해 이야기 한다.
빌라도는 예수를 처형하고 싶었지만 예수의 말이 모두 유죄처럼 보이게 했다고.
이 장면에서 고흐의 화가가 되기 이전의 경험을 통해 고흐는 이성적으로 생각했고
외로움과 싸워가며 정말 지금이 아니라면 다가올 미래를 위해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도록 감독은 영화를 이끌고 있다.
탕기 의사와의 대화에서도
그림을 그릴 때 생각이 멈추는데 생각을 멈추면 내가 내 안팎 모든 것의 일부라는 것이 보인다고
자신의 생각과 작품을 너무나 공유하고 싶다고
예전에 예술가란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와 영원의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한다고.
영원이란 다가올 시간, 자신의 작품은 다가올 세상에 줄 선물.
슬픔이 더 좋다고. 천사는 슬픈 이들 가까이에 있고
때론 병이 우릴 치유한다고.
약간의 광기기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고도.
이상이 대략 고흐가 창조하는 것들에 대한 감독의 설명들인 셈이다.
어느 정도의 광기, 알아주지 못함에 대해서도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가는 그.
사실 고흐의 그림은 개념 미술은 아닐지라도
현대화가들이 하는 작품에 예를 들어 줄리언 슈나벨의 플레이트 페인팅 같은 것과 맥락이 많이 닿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1853년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1868년 빌럼 2세 국립중학교를 그만두고 구필 화랑에서 일을 시작한다.
1876년 화랑을 그만두고 영국 램스게이트의 학교에서 무급 교사로 일했다.
이후 토머스 슐레이드 존스 목사의 보조 목사로 일하다가 네덜란드로 돌아온다.
브뤼셀의 전도사 양성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탄광에서 무급으로 일한다.
1880년 성직보다는 미술에 더 관심이 기울었고, 보리나주 탄광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리기 시작한다.
고흐는 브뤼셀과 헤이그, 뇌넨 시절을 거치고
1886년 파리로 온다. 이 3년의 시기에
이때 일본의 우키키요에에 영향을 받으며 렘브란트와 밀레의 어두운 화풍이 밝은 화풍으로 바뀐다.
영화에서도 고흐는 마다가스카르로 떠난다는 고갱에게 왜 일본으로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셍 레미 요양원을 포함 1888년부터 1890년 5월까지의 아를 시기
그리고 마지막 80일을 보냈던 오베르 시절.
고흐가 권총 자살을 했다는 게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왠 권총. 그림 그리는 것을 그토록 사랑했던 그고, 가난했던 그였기에.
감독을 그래서인지 고흐의 죽음을 타살로 묘사한다.
아를을 떠나면서 고흐는 65개의 스케치가 그려진 스케치북을 아를에 남겨놓고 떠난다.
이게 2016년 6월 고흐의 미공개 스케치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도 영화는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