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중세 철학의 보편 논쟁

haghiasophia 2019. 12. 22. 13:50


보편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와 보편과 개별의 우위를 두고 보편 논쟁이 중세에 벌어진다.

신플라톤주의 학자들의 주장에서 영감을 받아, 동고트왕국 시절(서로마 멸망후) 보에티우스가 제기했었다.

11세기에 이 보편 논쟁이 보다 의미를 띄게 된다.

우선 이슬람의 영향 확대로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크 교회는 이슬람의 영항하에 있고,

콘스탄티노플도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서유럽인들에게는 로마교회만이 실질적인 보편교회가 된다.

당시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많은 개별교회가 증가하면서

개별 교회와 보편 교회중 어느 것이 더 참된 교회인가?

인류라는 보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 인간의 죄가 어떻게 모든 인류에게 전수되는가?라는 질문들이 제기된다.

인류라는 보편 실재를 인정한다면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에 모는 사람들이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명제와

예수가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 아담에 의해 손상된 인간이 예수에 의해 회복된다는 가능성이 있게 되는데

보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론부터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보편 논쟁의 양측은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을 따르는 보편실재론과

반대편의 유명론자들로 나뉘며, 유명론자들은 변증론에 기반하여 모든 진리의 기준은 인간의 이성이라 하였고

반변증론자들은 이성보다 신앙이 우선이라 주장하는 양상을 띄었다.


이 시점에 켄터베리의 안셀무스라는 중요한 학자가 등장한다.

보편실재론을 주장했지만,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스콜라 철학의 정신으로 규정하면서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믿음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600년동안 이어진 스콜라 철학의 전통을 요약했다.


이어 아벨라르두스가 등장한다.

온건 실재론자였던 아벨라르두스는 보편 개념은 인간의 정신에 속해 있다고 주장했고

공통으로 같고 있는 본성은 개체에게 있다고 정리하면서 보편 논쟁으리 정리한다.

또한 그는 성경과 성경, 교부와 교부 사이의 가르침에도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성적인 근거를 갖고 판단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렇다와 아니다 Sic et Non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양쪽의 가장 권위 있는 견해들을 대비시킴으로써, 대비시킨 권위들 중 어떤 것이 더욱 더 타당한 근거를 가지는 가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함을로써 진리를 찾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Sic et Non은 스콜라 철학의 고유 방식이 된다.

아벨라르두스는 스콜라 철학과 11세기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된다.


11-12세기는 지적 호기심이 증가했고, 인간의 이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보편 논쟁에 담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하여 13세기 최고의 황금기 토마스 아퀴나스로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