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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media 니코메디아

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by haghiasophia 2018. 3. 1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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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메디아라고 하니 처음 듣는 도시다.

지금의 터키 이즈밋이다.

현대자동차 터키공장이 위치한 도시이기도 하고, 이스탄불, 부르사와 더불어 터키 3대 자동차 공업도시다.

마르마라해에 인접해 있어, 석유화학공장과 제지공장, 시멘트공장도 많다.

1999년에는 7.4 규모의 대지진으로 19,00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지밋인 니코메디아는 BC264년 비티니아Bithynia의 수도가 되었고,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었다.

상단 지도는 로마제국에서 사두정치를 할 때의 지도인데,

니코메디아도 당당히 수도의 역할을 했었다.

286년 디오클레티아스가 사두정치를 처음 고안해 냈을 때,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았고, 자신이 은퇴한 후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또 324년 리키니우스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패할 때까지 로마제국 동부의 수도였었다.

337년에 콘스탄티누스도 이곳에서 죽었다.


사두정치Tetrarchy

디오클레티아스가 자신의 친구 막시미아누스를 286년 서방의 공동 황제로 올리면서 분할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93년에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를 각각 동방과 서방의 부제로 삼으면서 사두정치가 시작되게 된다.

1차 사두정치293~305는 디오클레티아스가 국방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거의 단독으로 통치한 시기다.

스스로도 선임황제인 Senior세니오르라고 불렀다.

그는 또한 역사상 유명한 기독교 대탄압 Diocletianic Persecution을 시행한다.


네명의 공동황제들에 의해 305년 시작되었고, 313년 밀라노칙령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상단은 303년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니코메디아의 테오템프투스 주교와

303년 또는 311~312년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니코메디아의 안티무스 주교와 관련된 그림이다.



305년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를 해버린다.

2차 사두정치305~307가 시작된다.

동방과 서방의 부제였던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가 정제로 승격한다.

갈레리우스는 그의 부장이었던 발레리우스 세베루스를 서방의 부제로 임명하고

그의 외조카인 막시미아누스 다이이를 동방의 부제로 임명한다.


이 과정에 세습은 없었다.

그런데 서방의 정제였던 콘스탄티우스가 죽고, 콘스탄티우스의 군대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정제로 추대해 버린다.

서방의 부제였던 발레리우스가 승진해야 했는데...

그래서 갈레리우스가 발레리우스를 정제로 올리고, 콘스탄티누스를 부제로 내려 혼란을 잠재운다.


문제는, 동방의 부제 막시미아누스가 퇴위하면서 아들 막센티우스가 황제를 칭한다. 그리고 막시미아누스도 황제에 복귀한다.

막센티우스는 서방의 정제 발레리우스를 제압해 버린다. 사두정치 체제가 흔들렸다.


308년 동방의 정제 갈레리우스는 막시미아누스를 은퇴시켜버리고 막센티우스를 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 리키니우스를 서방의 정제로 삼는다.

승진을 못한 서방과 동방의 부제들의 불만이 쌓인다.

311년 중재자이자 리더 역할을 했던 갈레리우스가 죽는다.


이후 서로 싸우기 시작하고 313년에 서방의 콘스탄티누스, 동방의 리키니우스가 남는다.

리키니우스는 니코메디아를 수도로 삼은 사람이다.

324년에 콘스탄티누스가 최종 승자가 된다.


사두정치는 군사적 능력이 강한 사람을 정제나 부제로 삼아 효율적인 방어선을 구축했고 내란에 대응했었다.

또 사두정치가 흔들린 문제는 아들 상속을 하면서 생겨났고...

사두정치는 이후 동서방이 갈라지는 시초가 되었다.


암튼 지금의 이즈밋은 사두정치가 시작된 후,

동방의 정제이자 사두정치에서 1+3에 해당하는 실질적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왕궁을 세웠고,

갈레리우스, 리키니우스가 거주했으며,

비잔틴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꾸기전까지 콘스탄티누스 대제도 이지밋인 니코메디아에 있었다.

즉 이즈밋은 로마제국의, 길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역사속의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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