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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그리며 눈물짓노라

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by haghiasophia 2018. 3. 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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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그리며 눈물짓노라. (시편 137, 1)

오늘 화답송 첫구절이다.

바빌론 유수 (Babylonian captivity, Babylonian exile)와 관련된 이야기다.


우선 스쳤던 생각은, 일제 치하에서 강제 징집되어 만주로 보내진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눈물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연민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상반된 감정인, 시오니즘이 주는 거부감이었고.


바빌론은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 80km에 위치하고 있고, 현재의 명칭은 알 히라이다.

시온은 예루살렘이다.

오른쪽의 그림에서 보듯 비옥한 초승달 삼각지대의 양 쪽에 서로 떨어져 있는 곳들이다.


기원전 587년 유다왕국이 멸망하면서, 치드키야왕을 비롯한 유대인이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구약성서 예레미아서 39장과 열왕기하권 25장은 치드키야왕이 도망치다가 예리코 벌판에서 칼데아 군대에 잡혔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판결을 내려, 아들들과 유다의 귀족들은 살해당하고, 치드키야왕은 눈이 뽑힌 채 청동 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갔으며, 왕궁과 민가를 불태우고, 성벽을 허물었고, 백성들 대부분을 바빌론으로 끌고가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네부카드네자르왕기원전604~562은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만들게 한 왕으로 유명하다.

이집트의 파라오와 유다왕국을 두고 다투었었고 유다왕국을 차지했다.

 

구약성서 다니엘서에서는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왕과 벨사차르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크세르크세스의 아들 다리우스왕과 페르시아의 키루스왕 이야기까지 나온다.


위키백과에 있는 바빌론 칼데아왕조는 좀 다르다.

나보폴라사르 BC626~605, 네부카드네자르 BC605~562, 아멜 마르둑 BC562~560, 네르갈 샤레제르 BC560~556, 라바시 마르둑 BC556, 나보니두스 BC556~529


페르시아 왕조는 메디아왕조 BC728~550, 아키메네스왕조 BC550~330, 알렉산더 대왕 점령시대 BC330~250, 파르티아 BC250~226, 사산왕조 BC226~AD651 아우르는데,

바빌론 유수와 관련된 왕은 키루스 대제 BC549~530 이다.

BC554년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메디아의 아스티아게스왕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BC549년에 메디아를 정복한 후 아키메네스 왕조를 세웠으며,

리디아의 왕 크로이수스와 전쟁을 벌여 BC546년 승리를 거뒀다.

BC539년에는 바빌론의 나보니두스왕을 정복했다.

그는 스스로를 '바빌론의 왕,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 세계의 사면의 왕'으로 칭했다고 한다.

키루스 대제는 바빌론에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을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했고, 예루살렘에 네부카드네자르왕이 허물어뜨렸던, 유대인들의 신전을 다시 짓도록 허용했다.

구약성서 에즈라기 2장에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가 남녀 종 포함 5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오고, 이들이 성전 건축에 바친 금화 육만 천 드라크마 등등의 제물을 바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4장에서는 키루스 대제, 크세르크세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왕 시절에는 공사를 진행 못하고, 다리우스왕 시절에서야 공사를 재개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2번째 성전 건립 BC521~526


위키백과의 페르시아 왕조 계보는

키루스 대제 BC550~530, 캄비세스2세 BC529~522, 스메르디스 BC522, 다리우스1세 BC521~486, 크세르크세스1세 BC485~465, 아르타크세르크세스1세 BC465~424, 크세르크세스2세 BC424, 소그디아노스 BC424~423, 다리우스2세 BC423~405, 아르타크세르크세스2세 BC404~359, 아르타크세르크세스3세 BC358~338, 아르타크세르크세스4세 BC338~336, 다리우스3세 BC336~330으로 나온다.


다시 바빌론 유수로 돌아와서 보면,

유대인들은 BC587년 이외에도, BC597년에 여호아킨왕과 그의 일족이, BC582년에도 추가로 일부가 바빌론에 끌려갔었다.  

바빌론 유수 기간동안 유대인들은 바빌론과 페르시아 제국의 앞선 문화를 체험했고, 고난과 고통으로 민족일치를 강화했고,

바빌론 유수 이후, 대부분은 유대지방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교를 정립하고, 경전을 정리하여 구약 성서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일부는 바빌론에 남아 공동체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헤브라이즘과 헬리니즘이 문화와 사고의 큰 두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 헤브라이즘은 바빌론 유수 기간의 고난이 그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바빌론 강가 기슭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짓는다는 그 귀절이 오늘 가슴에 치고 들어왔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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