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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podrome

신화와 동로마, 터키 주변

by haghiasophia 2018. 3. 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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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podrome은 그리스어로 Hippos(horse)와 Dromes(way)가 합쳐진 말로, 전차 경주장이라는 뜻이다.

술탄아흐멧에 큰 전차 경주장이 있었다. (부르사에도 hippodrome이라는 지명이 있는 걸 보면 이스탄불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셉티미우스 세르베스 황제가 BC196년 비잔틴을 점령한 후,

BC203년 도시 전체를 다시 재건한다.

성곽도 확장하고, 히포드롬을 비롯한 많은 건물을 짓게 된다.


처음의 히포드롬은 상단 그림만큼 큰 규모는 아니었으나,

AD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히포드롬을 크게 확장한다.

가로 450m, 세로 130m의 크기로 10만명이 관람할 수 있는 크기였다.

경기장은 U자 모양을 하고 있었고,

황제가 관람하는 곳은 Kathisma라고 왕궁에서 바로 이어지는 동쪽에 있었다고 한다.

4차 십자군이 베니스에 팔아넘긴 네마리의 말 동상은 북쪽 정문에 있었다.

히포드롬 안에는 헤라클레스상,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상을 비롯한 신, 황제, 영웅들의 동상들이 있었다고 한다.

로마제국 시절 히포드롬에서는 전차 경주가 계속 열렸다고 한다.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이집트 카르낙 신전에서 투트모스3세의 오벨리스크를 가져온다.(BC1500년경 만들어짐)

전세계에 29개의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그중 하나다.

 532년 니카의 반란이 일어나 콘스탄티노플이 혼란에 빠진다.

이때 3만명의 반란군이 히포드롬 안에서 살육당했다.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뀐다.

로마만큼 전차 경주를 즐기지 않은 오스만은 행사때 이따끔씩 히포드롬을 사용했었다. (우측 그림)


이후 Ibrahim Pasha Palace와 Blue Mosque가 들어서면서, 히포드롬의 형태는 점차 지금과 같은 공원이 되어버렸다.


중앙의 사진은 Serpent Column이라고 델피의 신전에서 가지고 왔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페르시아군의 무기를 녹여 만든 것인데,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바쳐졌던 것이다.

콘스탄틴 2세의 오벨리스크라고 벽돌을 쌓아 올린 모스크는 로마 시절에 만든 것이다.

Arkadyus(395~408) 시절에 완성되었다.

독일 분수가 있는데, 이는 1901년 술탄 압둘 하밋 2세가 독일 황제가 방문했을 때 기념으로 만든 것이다.


술탄아흐멧에서 아래로 가다보면 히포드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016년 1월 12일에는 이 곳에서 테러가 일어나, 10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이 발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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