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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를 읽고

이런 저런 이야기

by haghiasophia 2021. 10. 1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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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영국 조지3세의 왕비 샬롯은 독일 태생의 화가 조파니에게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트리부나를 그려오게 한다.

트리부나는 우피치 미술관 맨 윗층의 팔각형 방인데, 라파엘로, 루벤스, 홀바인, 렘브란트, 미켈란젤로의 명화들이 가득한 방이었다.

그림의 중심에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그려져 있고, 안니발레 카라치, 귀도, 라파엘로 등의 그림들이 묘사되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Tribuna_of_the_Uffizi_(painting))

이중 일부는 우피치가 아닌 피터 궁에 있는 작품들이라고 한다.

또한 그림속에는 당시 그곳을 찾았던 영국의 외교관, 수집가, 여행자들도 같이 그려져 있다.

 

샬롯 왕비는 화가 조파니를 통해 우피치 미술관을 대신 방문한 셈이다.

 

설혜심 교수의 그랜드 투어를 읽었다.

17~8세기 영국의 귀족 자제들이 가정 교사를 동반하고 프랑스와 이태리를 여행했었다는 내용.

굳이 유투브를 넘어 책을 읽게 된 것은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애덤 스미스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가정 교사로 그랜드 투어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끌어서였다.

 

그랜드 투어를 설명하기에 앞서

1816년 최초의 증기선이 운행을 시작했고, 1825년에는 최초의 증기 기관차가 운행을 시작한다.

증기선의 출현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기간이 50일에서 13일로 줄어 들었다.

 

이 때 토마스 쿡이라는 인물이 역사에 등장한다.

그는 1841년 레스터에서 러프버러까지 12마일을 달리는 열차를 전세 내어 특별 유람 열차를 운영했다.

요금은 1인당 왕복 1실링 (2011년 기준 34파운드)에 식사 포함이었다.

1851년 영국 런던의 만국박람회를 맞아서는 런던까지의 패키지 프로그램을 내보였고,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자, 토마스 쿡은 1856년부터 안트베르펜, 브뤼셀, 쾰른, 프랑크푸르트암마인, 하이델베르크, 스트라스부르, 파리, 사우스햄스턴 등을 기착지로 하는 최초의 대륙 여행을 시작한다.

1865년에는 미국 여행 피캐지 상품을, 1872년에는 최초의 세계 일주 패키지 상품을 만들었다.

광범위한 집단을 대상으로 다양한 패키지 여행을 선보여서, 소상인, 사무원, 기술자들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여행, 교사와 사업가를 위해서는 대륙 여행, 비용이 좀 더 드는 이탈리아 여행은 성직자, 의사, 은행원, 고급 기술자, 부유한 상인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그럼 증기선과 증기 기관차가 19세기에 생기는데, 그 이전의 여행은 어떠했을까?

러시아의 피요트르 1세는1672-1725, 재위 1682-1725 황제의 신분을 감추고 런던의 공장, 박물관, 병원, 대학, 천문대, 조선소를 견학했었다.

영국 엘리자베스1세 여왕시절, 필립 시드니는 1572년 18세에 프랑스로 건너갔고, 이후 독일, 이태리, 폴란드, 오스트리아를 돌아보고 1575년 영국으로 귀국한다. 필립 시드니는 여행을 위해 말 네 필과 하인 세 명과 비서를 대동했다.

 

그런데 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가간 크고 작은 전쟁이 수없이 있었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여행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간단히 역사를 살펴보자.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무너진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1529년 1차 빈 포위, 1683년 2차 빈 포위를 한다. 또 1571년에는 레판토 해전이 있었다.

유럽 내부에서는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신교국과 구교국간에 30년 전쟁이 벌어진다.

1702년부터 1713년 사이에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있었고,

1776년의 미국 독립 선언,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뒤따랐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조 반박문에 이어

영국은 1534년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가톨릭 교회를 거부하고 스스로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어 버린다.

이를 통해 영국은 교황과 스페인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의 길을 걷는다.

1555년부터 영국의 도로는 체계적으로 정비된다.

1588년 영국은 스페인의 잉글랜드 침공을 막아낸다.

1607년 이후 영국은 미국, 카리브, 캐나다, 인도, 아프리카 등으로 식민지를 늘려나간다.

1688년에 영국 의회는 명예혁명을 통해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고 윌리엄 3세를 즉위시킨다.

1694년에는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된다.

18세기 영국으 조세수입은 프랑스의 세배가 넘으며, 이중 75%가 간접세였다고 한다.

 

그랜드 투어는 17세기 후반부터 영국 상류층에서 자식들을 유럽 대륙으로 보내 해외 문화를 체험하고, 외국어와 세련된 매너, 외교술, 고급 취향을 배워 오게 했던 것이 전형이었다.

독일에서 이태리로 여행했던 괴테도 있고, 북유럽에서 영국이나 프랑스, 이태리로 여행한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주류는 부를 축적한 이후 견문과 교양을 넓히려 했던 영국인들이었다는 거다.

 

17세기 중반까지 영국을 포함 유럽은 신구교 국가들로 나뉘어 30년 전쟁을 치르다 보니 여행하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고, 영국 정부도 일반인들의 가톨릭 국가로의 여행을 반역 행위로 규정하기도 했었는데, 17세기 후반부터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가 찾아오면서, 영국 사람들에게는 보다 수월하게 찬란한 그리스-로마 문명을 간직한 이탈리아, 화려한 궁정 문화를 꽃피운 프랑스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조성되었다.

 

또한 젊은 귀족의 자제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 대륙 여행을 떠나게 된 배경에는 17세기말부터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진부한 커리큘럼에 대한 비판과, 유럽에서 아카데미가 유행했던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대학은 라틴어나 그리스어 정도를 가르치는 반면, 유럽에서 성행했던 아카데미에서는 역사와 철학, 시, 수사학 등의 인문학 과목과, 승마, 프랑스어, 춤 들도 가르치다보니 공교육 사교육 논쟁도 크게 불었다고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동행 교사와 하인들을 데리고 대륙으로 건너가기 시작했고, 성공한 여행과 그렇고 그런 여행들의 결과들로 이어졌다.

보통 정형화된 루트를 따라 여행했는데, 프랑스로 건너가 일정 기간 체류한 뒤 이탈리아이 여러 도시를 거쳐 궁극적으로 로마를 보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고, 보통 3년의 기간동안 처음 18개월은 프랑스, 이후 10개월은 이태리, 이후 5개월은 독일 또는 베네룩스 국가들, 그리고 다시 프랑스에서 잔여 기간을 보내는 일정이었다고 한다.

 

도버에서 범선을 타고 프랑스 칼레에 내리면, 데생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여관으로 갔었고,

이 곳에서 4륜 포장마차인 6인승 카로스 또는 12인승 코시를 타고 파리로 이동했다고 한다.

18세기 프랑스의 교통수단은 비교적 잘 발달된 편이었다고 하고.

이들은 파리에 도착하면 복식부터 완전히 프랑스식으로 바꿔 입었다고 한다.

 

긴 여행 동안 자금은 보통 런던의 은행과 연결된 여행지의 은행으로부터 찾아 썼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니면 부유한 상인(지금으로 말하면 주재원)으로부터 돈을 찾아 썼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시점에 유럽 전역에 걸쳐 상당히 금융 네트워크가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지망생이었던 제임스 보스웰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1764년 스위스의 뇌샤텔 근처에 있던 루소를 찾아간 이야기, 1758년경 볼테르를 만난 이야기, 이후 프리드리히 2세를 비롯한 유럽의 왕족들도 만났고,

영국에서는 애담 스미스의 수업도 청강했고, 흄을 만났으며, 소설가, 화가, 배우 들도 만나고, 1763년에는 새뮤엘 존슨 박사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랜드 투어를 떠난 젊은이들은 인맥을 쌓기 위해 그 나라의 왕족, 귀족, 유명인들을 방문했는데, 소개장이 있어야 했다.

애덤 스미스도 동행 교사할 때 다급히 데이비드 흄에게 소개장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독일은 소개장 한 장이면 받아들여지는 데 문제가 없었던 반면, 프랑스는 훨씬 더 복잡했다고 하고, 이탈리아는 더 많은 소개장이 요구되었다고 한다. 신원보증 절차였던 소개장도, 지배세력의 분열 정도와 역사, 관습에 좌우되었던 것 같다.

 

동행 교사도 그랜드 투어를 통해 기회를 얻었다.

홉스는 갈릴레오를 만났고, 다른 과학자들과도 교류했으며,

애덤 스미스는 루소, 케네, 튀르고, 볼테르 등 프랑스 유물론자들과의 친교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다듬었다고 한다.

 

이런 여행을 통해 코스모폴리탄으로 태어난 것일까..

각 나라마다 영국인들을 위한 모임들이 만들어지고, 또, 여행중에는 영국이 좋다고 느끼고,

막상 돌아가서는 달라진 자신들을 발견하고.

 

암튼 계몽주의자들이 그랜드 투어의 동행 교사였다고 해서 찾아봤던 그랜드 투어.

규모를 보면 지금의 재벌 3세들이 해외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갔다 왔다는 견문을 넓혔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 속으로 비용 부담 없이 들어가고, 

또 그 지역의 실세와 연줄을 통해 교류하는 것이 말이다.

 

그랜드 투어는 이후 증기선과 증기기관차의 시대가 되면서 대중 여행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그리고 코로나로 새로운 국면을 접하는 이 시기 직전까지 전세계를 활발히들 여행다녔다.

여행이란 젊은이들에게는 교육의 일부이며, 연장자들에게는 경험의 일부다라고 베이컨이 말했다고 한다.

여행 예찬의 글은 무척 많다. 그리고 떠나 본 사람들은 안다. 그 말들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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